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방한으로 일각에서 북·미 대화 복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북·미 협상의 ‘키맨’을 맡아온 비건 부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손꼽히는 대북 대화파로 알려져 있다. 대북 초강경파인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회고록에서 비건 부장관과 그의 국무부 대북협상팀을 겨냥해 ‘통제 불능’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핵화 방법론을 둘러싼 북·미 양측의 인식차가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비건 부장관의 방한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특히 오는 11월에는 미국 대선이라는 대형 변수가 예고돼 있어 북한이 섣불리 미국과 합의를 도출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경우, 후임 행정부가 북한과의 합의를 뒤집어버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교가에서는 한·미 양국이 ‘스몰딜+α(플러스알파)’로 북한 설득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당시 논의됐던 영변 핵시설 폐기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스몰딜’을 가다듬어 북한에 다시 제안한다는 것이다. 고농축우라늄(HEU) 설비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설을 폐기 대상에 추가하고 북한의 합의 이행을 조건으로 대북 제재를 유예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다만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제재 해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온 상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4월 시정연설에서 “제재 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며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제재 해제에 관심 없다고 밝힌 데다 연말 시한도 이미 지나간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과 협상에 응할 가능성은 낮다.
실제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비건 부장관의 방한을 사흘 앞둔 지난 4일 담화에서 “우리의 비핵화 조치를 조건부적인 제재 완화와 바꿔먹을 수 있다고 보는 공상가들까지 나타나고 있다”며 “미국이 아직도 협상 같은 것을 가지고 우리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말했다. 최 제1부상은 그러면서 “조(북)·미 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루어 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 반등을 위한 보여주기식 북·미 정상회담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때문에 비건 부장관 방한이 북·미 협상 재개보다는 한반도 정세 관리 차원에서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6일 “비건 부장관 방한은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명분 쌓기 측면도 어느 정도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도발을 할 경우 그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게 있다고 돌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건 부장관은 우리 정부 당국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미워킹그룹 관련 문제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지난달 중순 방미했을 당시 비건 부장관과 한·미워킹그룹과 관련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운영방식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인영 신임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할 수 있는 일과 우리 스스로 판단해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는 게 평소 소신이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