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은 편성부터 심사, 국회 통과까지 너무나 급박하게 이뤄졌다. 정부는 35조3000억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추경안을 2차 추경안 통과 후 35일 만인 지난달 4일 국회로 넘겼다. 예산 편성 작업이 너무 긴급하게 진행된 탓에 정작 필요한 분야에 예산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회의 3차 추경안 심사 과정에선 정부 관계자들이 대형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나온 일도 있었다. 한 경제부처의 담당 공무원은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3차 추경안 조정소위원회에서 약 1700억원 규모의 예산 증액이 요청된 사업에 대한 의원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당시 의원은 소위에서 “그 정도 답도 못한다는 건 준비가 안 된 것”이라고 지적했고, 정부 관계자는 답변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급박한 예산 편성은 부실한 사업 설명으로 이어졌다. 한 사회부처의 담당 공무원은 소위원회의 예산 심사 과정에서 “사업 설명이 잘못됐다. 급하게 하다 보니 정리를 잘못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 사업은 약 3000억원 규모의 증액이 요구된 대형 신규사업이었다. 질문을 던진 의원은 “설명이 잘못됐고, 준비도 미비한 것 같다”며 심사 보류를 요청했다.
특히 정부가 국회로 제출한 3차 추경안의 사업별 예산을 들여다보면 예산 편성이 얼마나 긴박하게 이뤄졌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추경안 세출증액내역 299개 세부사업 중 증액분이 10억원을 넘는 사업은 275개다. 이중 72개 사업이 10억원 단위로 기재됐다. 10억 단위 아래로 ‘0’ 이외 숫자가 없는 것이다.
추경안 각목 명세서에는 각 사업별로 인건비와 운영비, 재료비 등이 1000원 단위로 적혀 있다. 그럼에도 10억 단위로 적힌 사업이 72개에 달한다는 것은 각 정부 부처가 예산안을 면밀한 검토를 거쳐 국회로 넘겼는지 의문을 사기 충분하다. 72개 사업 중 36개 사업 예산은 2차 추경예산 통과 당시 1000만원 또는 100만원 단위까지 기재돼 있다. 본예산 혹은 이전 추경 편성 때에는 구체적으로 비용이 계산됐던 사업이 3차 추경안에서는 두루뭉술하게 산정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국회에 제출된 72개 사업예산을 모두 더하면 총 6조2930억원(기획재정부 예비비 1조3000억원, 지방채인수 1조1000억원 포함)에 달한다. 23조5000억원에 달했던 3차 추경안 세출증액 내역의 27%가량이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달 29일 열린 산자위 전체회의에서 3차 추경안에서 3000억원 증액이 요청된 ‘전력효율 향상’ 사업에 대해 “동그라미(0)만 8개인데, 아무런 계산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떻게 이렇게 딱 떨어질 수 있나. 예산 책정에 있어 구체적인 분석이 있었던 것일지 의문이 든다”며 “추경안을 (단시간 내에) 준비해야 했던 정부가 얼마나 급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면밀한 분석 없이 책정된 추경안 예산에 우려를 표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긴급하게 적자 추경 편성을 하다보니 각 부처가 구체적으로 사업을 검토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정작 쓸 데는 따로 있는데, 예산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 걱정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