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목의 성경 현장] 기다림의 장소…다락방 기념교회(예루살렘)

입력 2020-07-07 07:30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마태복음 26:19) 언제나 고향에 돌아온 마음으로,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다. 이 봉우리에 점화된 성령의 불꽃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우리에게 전파된 것이다.

예루살렘에는 시온산이라고 불리는 산봉우리가 있다.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 764m다. 산봉우리에 우뚝 솟아 그 위용을 드러내는 교회가 ‘마리아 영면교회’이다. 그리고 조그마한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다락방 기념교회(최후 만찬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찾아가는 시온산은 구약성경에서 다윗이 여부스 사람들에게 빼앗아 다윗성 또는 시온산이라고 불렀던 장소와는 다르다(삼하5:7). 그곳은 오늘날 다윗성(City of David)이라고 불리는 지역을 포함해서 성전산(모리아산) 일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온산의 위치가 바뀌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약의 시온산 위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주후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예루살렘의 남서쪽에 위치한 높고 널찍한 산봉우리를 시온산으로 불렀다. 이후 비잔틴 시대가 되면서 크리스천들도 이 산봉우리를 시온산으로 불렀고(주후 4세기), 20세기 초에 와서 학자들의 연구결과 구약시대의 시온산 위치가 다윗성과 성전산 일대라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전통에 따라 예루살렘 남쪽 산봉우리를 오늘날에도 시온산으로 부르고 있다.

시온 산에서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다락방 기념교회이다. 이 기념교회 건물의 구조는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흔적이 모두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1층은 다윗의 무덤과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 반면, 조그만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다락방이 나타난다. 그리고 다락방은 아랍 사람들이 모스크로 사용했던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 있고, 주변에 몇 개의 기념 경당들이 만들어졌으나 모두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어 볼 수가 없다.

시온산에 세워진 마리아 영면교회

하나의 기념교회에 서로 다른 종교의 흔적들이 공존하고 있는 구조가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분명하게 알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16세기 회교도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2층 다락방을 모스크로 개조해서 이슬람교 사원으로 사용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초대교회 크리스천들이 기념교회를 세웠는지, 아니면 유대인들이 회당이나 다윗의 무덤을 먼저 세웠던 곳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유대인들은 주후 70년 이후 이곳 시온산 봉우리에 7개의 회당을 세웠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 장소였다고 주장하는 반면, 기독교인들은 주후 130년경 이 장소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으며, 4세기에는 사도들의 교회가 세워졌고, 5세기에는 시온교회가 세워졌던 자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방문하는 다락방 기념교회가 된 과정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주후 10세기부터 이곳에 다윗의 무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십자군 시대에 들어서(11세기) 1층의 다윗 무덤을 포함하는 2층 구조의 다락방 기념교회를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1층에 다윗의 무덤을 두고 교회를 짓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유는 사도행전 2장 29절 말씀 때문이라고 한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 다락방에서 설교할 때 이와 같은 말을 했다.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십자군 시대 크리스천들은 ‘다윗의 묘가 우리 중에 있다’는 베드로의 말을 직설적으로 해석하여 1층에는 다윗의 무덤을 두고 2층에 다락방 기념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이 교회마저도 얼마 가지 못하고 아랍 사람들에 의해서 파괴되어 버렸다. 그리고 14세기 들어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의해 고딕 양식의 기념교회가 세워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다락방 기념교회 아래층에 있는 다윗왕의 가묘

필자는 항상 마치 고향에 돌아온 마음으로,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다.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시온산 봉우리가 교회 역사상 얼마나 중요한 장소였던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더불어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셨던 장소다. 그리고 이 만찬에서 오늘날 성만찬이 유래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자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었던 곳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이 거룩한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이셨던 장소이기도 하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도마가 예수님의 못 자국과 창 자국에 손을 넣었던 곳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날마다 모였던 곳이며, 120명이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 불같은 모습으로 성령이 임했던 곳이다. 그래서 최초로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한 장소이며, 교회 시대와 은혜 시대를 알리는 성령의 횃불이 뜨겁게 타올랐던 곳이다. 이 봉우리에서 점화된 성령의 불꽃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에 퍼지고 지중해를 건너 우리에게 전파된 것이 아니던가?

이곳을 방문하면 항상 기념교회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시온산을 내려다보며, 한눈에 들어오는 예루살렘과 감람산을 바라보며,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우리 마음속에, 예루살렘에, 그리고 한반도에 다시 불일 듯 일어나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한다.

김상목 성경현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