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추락 와중 고이케 도쿄지사 재선, 日 첫 여성총리 가능성

입력 2020-07-06 17:18 수정 2020-07-06 17:31
재선 확정 기자회견에서 꽃다발을 받고 포즈를 취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A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흡한 코로나19 대응, 측근 비리 등의 문제로 흔들리는 와중에 고이케 유리코(68) 도쿄도지사가 압도적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야심가’라는 평을 받는 고이케 지사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일본 최초 여성 총리 가능성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6일 NHK방송 등에 따르면 전날 진행된 도쿄도지사 선거 개표 결과 현직인 고이케 지사가 59%의 지지를 얻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 하에 한 차례도 거리 유세에 나서지 않고 소셜미디어와 TV로 대중 노출 빈도를 늘린 전략이 먹혀들었다. 특히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자 매일같이 코로나19 대응 TV 기자회견을 자청해 주목도를 높인 점이 현직 지사로서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는 평가다.

역대 최다인 22명의 후보가 이번 선거에 난립했지만 대대적 미디어 공세에 현역 프리미엄까지 더해진 고이케 지사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TV도쿄 앵커로 활동하다가 40세에 정계에 진출한 고이케 지사는 남성 중심의 보수적 문화가 강한 일본 정치권에서 ‘유리 천장’을 깨뜨려온 대표적 여성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참의원과 중의원 8선을 지냈고, 내각에서도 방위상·환경상 등을 역임했다.

하지만 ‘철새 정치인’ ‘정치적 목적이라면 무엇이든 할 사람’이라는 비판도 나오는 등 평가가 엇갈린다. 고이케는 일본신당·신진당·자유당·신보수당을 거쳐 2003년 자민당에 입당했지만 2016년 탈당해 무소속으로 도쿄도지사에 당선됐다. 이듬해에는 우익신당 ‘희망의 당’을 꾸려 아베 체제에 도전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고이케는 무소속 출마했으나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자체 후보를 내지 않고 그를 후원하면서 사실상 여권 후보로 분류됐다. 하지만 고이케의 전력 탓에 자민당 내에서는 그를 향한 의구심이 여전하다. 당 간부급 인사는 아사히신문에 “고이케는 이대로 얌전히 도지사직으로 들어갈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전직 내각 관계자도 “향후 정세가 유동적 국면에 들어서면 또 신당 창당 등을 거론하며 중앙정치를 엿볼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 지지율이 이날 발표된 보수 성향 요미우리신문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30%대(39%)로 주저앉는 등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점도 고이케 지사의 야심에 불을 붙일 것으로 전망된다. 노나카 나오토 가쿠슈인대 교수는 “고이케는 야심가다. 그는 수상이 되고 싶어 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자민당 내부에서는 아베 총리가 ‘여권 후보 압승, 야권 참패’로 정리된 이번 선거를 내년 중의원 선거의 가늠자로 보고, 중의원 조기 해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조기 해산 후 총선거를 통해 흔들리는 정권 기반을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