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 이후 법조계 원로들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안이 2005년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로 사직했던 김종빈 전 검찰총장의 전례와는 구별된다는 의견이 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15년 전과 지금은 장관이 행사한 지휘권의 내용과 성격, 지휘권 행사에 이른 과정 등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총장이 사직한 전례를 따를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윤 총장은 6일 고검장·검사장 회의 결과를 보고받은 뒤 숙고에 들어갔다. 밖에서는 수사지휘를 받고 안에서는 조직 독립성 수호 요구를 받은 윤 총장으로서는 선배들의 의견을 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검찰총장을 지낸 한 법조계 인사는 “총장에 대한 수사지휘란 매우 이례적인 것이고, 따라서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할 만하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장관의 총장 지휘라는 초유의 일에서 2005년과 이번 사례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긴 어렵다는 의견을 보인다. 천 전 장관은 2005년 검찰이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수사하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해 김 전 총장과 달리 불구속 의견을 폈다. 이에 천 전 장관과 김 전 총장은 충분한 기간 여러 차례 독대 형식의 토론을 했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결과 수사지휘권이 행사됐다.
당시 김 전 총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우려하는 입장을 내고 사임했지만 천 전 장관의 지휘권 행사 자체는 적법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경과를 잘 아는 법조계 인사들은 “장관이 오히려 총장의 체면을 위해 지휘권을 행사했다”고 보기도 한다. 수사가 무르익은 단계에서 핵심 쟁점을 놓고 장관과 총장이 허심탄회하게 견해를 주고받은 결과였고, 지휘권 행사 자체에 검찰총장을 향한 노골적인 사직 압박이 담기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정들은 추 장관이 윤 총장을 배제하는 의미로 행사한 이번 ‘검·언 유착’ 의혹 사건 수사지휘와 비교되는 측면이다. 법조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2005년 장관의 지휘는 이번처럼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열린 고검장·검사장 회의에서도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과연 지휘의 내용이 되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항명’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의를 표해볼 여지가 있다는 해석도 있다. 검찰총장을 지낸 한 인사는 “검찰청법에 따라 지휘가 이뤄졌다지만, 공무원법을 보면 부당한 명령에 대해서는 저항할 권한도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유사한 법체계를 가진 국가들 중 유독 한국에서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활발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처럼 대륙법계인 선진국들은 장관의 지휘권을 극히 예외적으로 다뤄 왔다는 얘기다. 독일에서는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발동된 전례가 없었다. 일본에서는 1954년 법무대신이 도쿄지검 특수부의 정치인 수사 사건에서 불구속을 지휘한 1차례의 사례가 있다. 이때 일본 법무대신은 사직했다.
법조계 원로들은 “검찰총장의 임기를 2년으로 보장한 것은 외부의 압력이 있더라도 검찰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라는 해석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윤 총장은 지난 고검장·검사장 회의에서 “독립적 특임검사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피력됐음을 보고받았고, 현재 외부 자문을 얻으며 숙고 중이다. 법조계는 윤 총장이 추 장관에게 “지휘권 행사를 재고해 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경원 허경구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