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X ‘씨맥’ 김대호 감독의 화법은 난해하다. 최근 화제를 모은 단어는 ‘상상 속의 트런들’이다. 지난 5월 ‘2020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포스트 시즌 플레이오프 2라운드 T1전을 치르던 도중 정글러 ‘표식’ 홍창현의 게임 내 더딘 성장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트런들이 12레벨일 때 그라가스가 10레벨이면 트런들이 궁 안 쓰고 게임 이긴다니까? 그리고 트런들이 미드 갱을 안 해도 벌벌 떤다니까? 그 상상 속의 트런들이 계속 갱을 해주고 있어. 너 갱 안 다녀도 돼. 잘 크면 상상 속의 트런들이…. 상대방은 계속 상상해. ‘트런들이 왼쪽에서 나오나? 오른쪽에서 나오나?’ 그냥 그걸로 게임이 이겨진다고….”
얼핏 듣기엔 우스운 단어지만 내용에는 뼈가 있다. 상상 속의 트런들은 서머 시즌에 접어들자 전성기를 맞았다. 요즘 미드·정글 키워드는 ‘트런들 2렙갱’ ‘트런들 3렙갱’이다. 트런들은 상상과 현실을 오가며 미드라이너들의 골머리를 썩이고 있고, 반대로 정글러들은 이 ‘갱갈까 말까’에 특화된 챔피언으로 매일같이 재미를 보고 있다.
상상 속의 트런들 이상으로 화제를 모은 김 감독의 멘트는 ‘정글 도는 법을 까먹어버려서’였다. 같은 T1전 이후 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팬들에게 메시지를 남긴 그는 “바텀이 주도권을 가져 시작이 좋았으나, 정글 도는 법을 까먹어버려서 미드, 정글의 힘이 올라오지 못했다”며 “자연스럽게 상체 주도권을 잃어 패배했다”고 해당 게임 2세트를 복기했다.
‘정글 도는 법을 까먹어버려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어떻게 프로게이머, 그것도 정글러로 솔로 랭크 챌린저 티어를 달성한 선수가 정글 도는 법을 까먹겠나. 그런데 지난달 사석에서 만난 한 지도자는 그 말의 맥락은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선수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김 감독의 지도 방법엔 공감하지 않지만, 김 감독이 한 말이 어떤 뜻인지는 알 것 같다”며 “우리 팀 정글러도 정글을 도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다”고 했다.
“대회에서는 코치들이 초반 5분 동안 정글링 동선을 짜준다. 그런데 경기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그게 꼬인다. 예를 들면 바텀이 터지기 시작하는데 ‘아, 내가 성장해서 캐리해야지’하는 마음이 생겨 바텀을 쳐다보지도 않거나 하는 것이다. 솔로 랭크의 잘못된 습관이 나오는 거다. 솔로 랭크와 팀 게임은 다르다. 아마 그런 맥락에서 그 얘기가 나왔을 것이다.
작년에 우리 팀 코치도 정글러 때문에 비슷한 말을 했다. 게임이 터져나가는데 선수가 돌거북(속칭 돌골렘)을 먹고 있으니까 ‘야, 너 돌거북! 돌거북 먹지 말랬지!’하면서 답답해했다. ‘너 그 잘하는 타잔이 돌거북 먹는 거 본 적 있냐고!’하면서. 아마 그런 실수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일 것이다.”
이처럼 김 감독의 언어는 난해하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인상 깊은 경우가 꽤 있다. 현장에서 김 감독에 대한 호불호는 그 어떤 인물보다도 크게 갈린다. 그렇지만 그가 LoL이라는 게임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데에는 대다수가 동의한다.
그리고 지난 4일 또 하나의 ‘씨맥’이 LCK에 왔다. 샌드박스 게이밍의 신임 사령탑 ‘야마토캐논’ 야콥 멥디 감독이다. 스웨덴 출신의 야마토캐논 감독은 2018년 팀 바이털리티를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본선에 진출시켜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인물이다.
커뮤니티에선 야마토캐논 감독이 프로게이머 출신의 젊은 감독이라는 점, LoL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는 점 등을 공통점으로 꼽으며 김 감독과 비슷하다고 얘기한다. 무엇보다 지난 4일 팀 다이나믹스와 치른 LCK 데뷔전에서 김 감독처럼 독특한 상징과 비유를 활용한 어법을 구사했다는 게 밝혀지면서 그는 ‘푸른 눈의 씨맥’으로 자리매김했다.
야마토캐논 감독은 김 감독보다 세련되고 멋진 화법을 구사했다. “‘개인은 손가락 하나일 뿐이지만, 모이면 주먹이 된다. 그리고 손가락은 주먹을 못 이긴다. 뭉쳐서 주먹이 돼라.” ‘온플릭’ 김장겸이 다이나믹스전 이후 방송 인터뷰에서 밝힌 야마토캐논 감독의 요구 사항이다.
야마토캐논 감독의 명언 퍼레이드는 이날 경기 후 기자실 인터뷰에서도 계속됐다. ‘루트’ 문검수는 야마토캐논 감독이 경기 전 나눠준 드래곤볼 모형이 인상 깊었다고 했는데, 이와 관련된 질문을 들은 야마토캐논 감독은 빙그레 웃은 뒤 모형을 나눠준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상징적인 것을 좋아한다. 만화에서 드래곤볼 7개를 모으면 용을 소환해 소원을 빌 수 있다. 이처럼 선수들이 서로 돕고 협동한다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
한화생명e스포츠와의 ‘멸망전’을 앞둔 각오 또한 남달랐다. 하위권인 두 팀은 8일 2경기(오후 8시)에서 맞붙는다.
“한화생명을 마주한다 해서 특별히 달라질 건 없다. 한화생명의 현 상황이 좋지 않지만, 잃을 게 없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 1승을 했다고 해서 방심하지 않겠다. 그들이 팀워크를 맞추고, 갑자기 경기력을 향상시키기까지 단 하루 또는 한 시간도 안 걸릴지도 모른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