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K좀비’ VS 기괴한 ‘해외 좀비’

입력 2020-07-06 15:51 수정 2020-07-06 15:54
'반도' 스틸. NEW 제공


“K좀비는 단순히 괴물이나 크리처(창조된 생물) 같은 느낌이 아니에요. 조금 전까지 우리의 이웃이었던 사람, 내 동료와 같은 인간이었던 느낌을 많이 준다는 게 특징이죠.”

2016년 1000만 영화 ‘부산행’으로 K좀비물의 이정표를 세운 연상호 감독은 K좀비의 특징을 이렇게 분석했다. 부산행의 속편 격인 ‘반도’의 15일 개봉을 앞두고 최근 열린 제작보고회 자리에서였다.

이 설명에 따르면 한국의 좀비들은 극에서 호러를 강화하기 위해 쓰이는 이야깃거리라기보단 일상 속에서 탄생하는 기괴한 무엇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대한 은유적 성격도 강하게 띤다. 좀비가 가진 상징성은 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부터 최근 영화관에서 꾸준히 관객몰이 중인 ‘#살아있다’까지를 관통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K좀비’라는 단어가 일반명사처럼 자리 잡은 이유는 한국의 좀비들을 바라보는 해외 반응이 그만큼 뜨거워서다. 한국 콘텐츠의 해외 방송사 지부 역할을 하는 넷플릭스를 통해 지난해 1월 공개된 ‘킹덤’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그널’ 김은희 작가는 굶주림에 사체를 먹기 시작한 백성들을 이야기 전면에 세워 권력층의 부조리를 넘어 계급적 폐해를 그리는 데까지 나아갔다.

김 작가는 최근 킹덤 시즌2 런칭을 기념해 진행된 인터뷰에서 “시즌2도 슬픔의 정서를 가지고 가고자 했다”며 “배고픔 때문에 좀비가 된 민초, 권력에 눈이 멀어 허기를 느끼는 지배층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권력의 망함도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매체들 역시 킹덤 시즌1 공개 당시 “연출과 각본 모두 환상적이다. 익숙한 소재와 조선 시대 배경이 합쳐져 특별한 장르물이 탄생했다”거나 “좀비물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쏟아냈다.

부산행에서 4년이 흐르고 폐허가 된 반도를 배경으로 한 반도는 최근 2020년 칸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된 데 이어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185개국에 선판매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좀비물 자체가 주목받게 된 객관적 환경도 호재로 작용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를 강타하면서 전염성에 기반한 아포칼립스를 그린 콘텐츠에 관한 관심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킹덤' 스틸. 넷플릭스 제공


서구의 ‘좀비’는 당연하게도 오컬트적인 색채가 강했다. 극의 호러 소재로 쓰이던 그로테스크한 좀비들에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한 시도도 서구에서 먼저 시작됐다. 바로 현대 호러영화사의 새 장을 연 기념비적인 ‘조지 로메로의 시체’ 시리즈 첫머리를 장식하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다.

영화는 어느 한적한 시골에서 때로 생겨난 좀비들에 독특한 색깔을 입혀 미국 자동차산업 발전과 함께 붐을 일으킨 자동차극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에서는 이 영화를 “사회적 동요와 인종주의, 핵가족의 붕괴, 폭도에 대한 공포, 그리고 아마겟돈까지 60년대 후반 미국이 골몰하고 있던 각종 문제를 건드린다”며 “선이 항상 승리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는 위안도 확신도 찾을 수 없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불안감을 반영한 최초의 공포영화”라고 평가했다.

해외의 좀비물과 K좀비물에 차별점을 부여하는 특징으로 ‘일상성’만 거론되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는 기괴한 움직임과 좀비들의 빠른 속도감을 K좀비의 특색으로 꼽는다. 좀비의 운동성에 주목한 이런 연출 방법은 그로테스크한 좀비의 외연이 낯선 국내 관객들이 느낄 이질감을 낮추면서도 서사적 탄력성을 더할 수 있는 영리한 전략이기도 했다.

괴기한 외양과 양으로 승부를 보는 해외 좀비들과는 다른 결을 가져가는 셈이다. 가령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킹덤2에 대해 “지금까지 좀비물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킹덤의 좀비들은 AMC 좀비 드라마 속 꾸물거리지 않고 훨씬 빠르다. 또 한 번 ‘워킹 데드’를 뛰어넘었다”고 치켜세웠다.

기괴한 움직임의 모티브를 ‘무용’에서 찾는 전략도 K좀비에 새로운 색깔을 부여한 시도였다. 부산행과 킹덤에 좀비가 본 브레이킹 댄서 전영 안무가가 좀비들의 동작 지도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지역의 흑인들을 중심으로 확산한 본 브레이킹 장르는 관절을 뒤 꺾는 고난도의 동작을 포함한 격렬하고 절도 있는 움직임이 특색이다. 개봉을 앞둔 반도에도 연이어 참여한 전 안무가는 높은 수위에 액션 장면에는 직접 출연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NEW 제공


반면 지난 2월 코로나19 경보단계가 심각 단계로 격상한 이후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살아있다’에는 현대무용을 전공한 예효승 안무가가 참여했다. 벨기에 세드라베 무용단 등 유수의 무용단에서 활약했던 그가 표현한 좀비는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움직임을 뽐낸다.

좀비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K좀비의 성격과 특색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원인불명 바이러스에 감염되며 폭력적으로 변하는 #살아있다의 좀비는 의식은 없을지라도 평범한 사람일 때의 성격과 직업적 성향을 얼마간 지니고 있다. 경비원은 계속 순찰을 돌고 소방대원은 로프를 타고 오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래서 영화가 앞세운 좀비들은 때때로 폭력적으로 변하는 개개인의 현대적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