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팀은 감독과 특정 선수만의 왕국이었습니다.”
고(故) 최숙현(23)씨와 함께 뛰었던 동료 선수들이 6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김규봉 감독, 선수, 팀닥터의 추가적인 폭행·폭언 사실을 증언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감독·선수들은 같은 시간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상임위원회의 긴급 현안 질의에 증인으로 참석해 가해 사실을 정면 부인했다.
운동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단상 위에 오른 피해 선수들은 땅바닥을 응시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기자회견문을 읽어 나갔다. 이들이 처벌 1순위로 지목한 건 주장 A선수였다. 선수들은 “A선수가 숙현 언니를 정신병자라고 말하며 이간질해 가깝게 지내지 못하게 했다”며 “몰래 방에 들어와 휴대폰에 지문을 인식시켜 잠금을 풀고 카카오톡을 읽었으며, 자신과 사이가 나쁜 사람과 다시는 연락하지 못하게 했다”고 밝혔다.
폭행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선수들은 “고소공포증이 있는 저의 멱살을 잡고 옥상으로 끌고 가 ‘뛰어내리라’고 협박해 잘못했다고 사정하기까지 했다”며 “감기 몸살에 걸렸을 땐 훈련을 하지 않았다고 선배를 시켜 각목으로 폭행해 피멍 등 부상을 입었다”고 증언했다.
팀닥터의 성추행 의혹도 추가적으로 제기됐다. 선수들은 “팀닥터는 심리치료를 이유로 가슴과 허벅지를 만지는 등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며 “숙현 언니를 극한까지 끌고 간 뒤 자살하게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했다.
김 감독의 폭행은 더 구체적으로 나열됐다. 선수들은 ‘빵 20만원어치를 토하면서까지 먹게 한 일’ ‘견과류를 먹었다고 견과류 통으로 머리 뺨 가슴을 때린 일’ 등을 증언했다. 이날 이용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외 다른 6명의 피해 선수들도 ‘손을 발로 차 손가락이 부러진 일’ ‘담배를 입에 물리고 뺨을 때려 고막이 터진 일’ ‘청소기를 집어 던지고 쇠파이프로 머리를 때린 일’ 등의 사실을 더했다.
김 감독이 미성년자 선수들에 음주를 강요한 정황도 드러났다. 한 선수는 “김 감독이 고등학생이었던 선수들에게 술을 먹인 뒤 ‘토하고 와서 마시라’고 했다”며 “바닥을 기면서 봐달라고 했지만 웃기만 했다”고 증언했다.
제대로 문제제기 할 수 없었던 체육계 내외부 문제도 지적됐다. 이들은 “경주경찰서 참고인 조사에서 담당 수사관이 ‘최씨가 신고한 내용이 아닌 자극적인 진술은 더 보탤 수 없다’며 일부 진술을 삭제했다”며 “운동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대회장에서 만날 가해자들에 보복당할 것이 두려워 고소를 하지 못했고, 조사 이후 훈련을 못할 정도로 불안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미 폭언·폭행 사실을 담은 녹취록이 공개됐고 구체적인 피해 증언도 이어졌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A선수와 김 감독, 다른 선수 B씨는 이날 의원들의 질의에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가해 사실을 묻는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의 질문에 김 감독은 “가슴아픈 일이지만 그런 적 없다”고 했다. A선수도 “폭행한 적이 없다”고 했다. 고인에 사죄할 마음이 없느냐는 이 의원의 추가 질문엔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마음 아프지만 성실히 조사에 임했다” “폭행한 사실이 없으니 미안하고 안타깝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