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방한…북미 대화 ‘재개’ 포석인가, 북한 도발 ‘대비’ 목적인가

입력 2020-07-06 13:38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 7∼9일 방한
북한 접촉 가능성…북미 대화 급진전 배제 못해
우리 정부 중재안 통해 북미 협상 ‘물꼬’ 가능성도
북한 도발 막기 위한 ‘예방적’ 차원 방한 분석도 있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6일 청와대에서 당시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였던 스티븐 비건 부장관의 예방을 받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오는 7∼9일 한국을 방문한다.

비건 부장관의 이번 방한은 문재인 대통령이 3차 북·미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지난 1일 밝힌 이후에 이뤄지는 것이라 더욱 주목된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5일(현지시간) “한국을 방문한 비건 부장관이 판문점 등지에서 북한과의 접촉을 통해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의 물꼬를 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만일에 있을지도 모를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비 성격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비건 부장관은 지난달 29일 화상 연설을 통해 “외교를 향한 문을 계속 열어둘 것”이라고 북한에 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은 달라진 것이 없다.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경우 비건 부장관의 맞상대로 유력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4일 “조·미(북·미) 대화를 정치적 위기를 다뤄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 부상의 담화는 비건 대표의 방한 사실이 공개된 이후 나온 것이라 사실상 만남 거부 의사를 공개적으로 전달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비건 부장관이 북한을 만족시킬 선물 보따리를 가져갈 경우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장밋빛 시나리오는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북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미국의 인도적 지원 제안을 침묵으로 거절해왔다. 제제 완화 수준의 큰 선물이 아니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다시 이끌어내기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미국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런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은 북한에 부분적이라도 제재 완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주목되는 우리 정부의 중재안이다. 우리 정부가 남북 협력 사업 등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낼 경우 북한의 마음이 움직일 가능성은 적지 않다.

비건 부장관의 이번 방한 목적이 북한과의 대화 재개보다는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는 데 맞춰져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다. 미국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는 것이다.

비건 부장관이 한국 방문에서 긴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문제를 의제에 올릴 가능성도 있다.

비건 부장관은 이번 방한에서 조세영 외교부 1차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비건 부장관이 지난해 12월 방한 때에 이어 이번에도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건 부장관은 또 서훈 청와대 신임 국가안보실장 등 새로 임명된 우리 측 외교안보 인사들과 상견례 성격의 만남을 가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비건 부장관은 한국 방문 일정을 마친 뒤 일본을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비건 부장관의 방한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 정부 고위인사로는 첫 한국 방문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