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은 감독·특정 선수의 왕국이었다”

입력 2020-07-06 11:12 수정 2020-07-20 23:49
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 선수들과 이용 의원 등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과 관련해 피해실태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팀은 감독과 특정 선수만의 왕국이었습니다.”

고(故) 최숙현 선수와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에서 함께 뛰었던 동료 선수들이 6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운동복을 입은 채 마스크를 착용하고 단상 위에 오른 2명의 선수들은 내내 땅바닥을 응시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기자회견문을 읽어 나갔다. 피해를 입어 신체·정신적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음에도 이들이 용기를 내 읽은 기자회견문엔 고인과 자신들이 경주시청에서 겪었던 폭행·폭언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들을 포함한 모든 피해자들이 처벌 1순위로 지목한 건 팀 내 분위기를 주도하며 선수들을 억압했던 주장 장윤정 선수였다. 선수들에 따르면 주장 선수는 선수들을 수시로 감시하고 서로 이간질하며 폭언을 일삼았다.

선수들은 “주장 선수는 숙현이 언니를 정신병자라고 말하며 이간질해 가깝게 지내지 못하게 했다”며 “심지어 몰래 방에 들어와 휴대폰에 지문을 인식시켜 잠금을 풀고 카카오톡을 읽었으며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 연락했다는 이유로 다시는 연락하지 못하게 새벽에 억지로 연락하도록 시키는 등 지속적으로 괴롭혔다”고 말했다.

폭행도 지속적으로 당했다. 선수들은 “훈련하면서 실수를 하면 물병으로 머리를 때리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저를 멱살 잡고 옥상으로 끌고 가 뛰어내리라고 협박해 잘못했다고 사정까지 했다”며 “감기 몸살이 걸려 몸이 좋지 않았을 때도 훈련을 하지 않았단 이유로 선배를 시켜 각목으로 폭행해 피멍 등 부상을 입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폭행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된 팀닥터의 전횡도 가혹했다. 자격도 없이 선수들의 심리치료를 진행하던 와중에 심지어 성추행까지 했단 의혹도 제기됐다. 선수들은 “팀닥터는 치료를 이유로 가슴과 허벅지를 만지는 등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며 “심지어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숙현이 언니를 극한으로 끌고 가서 자살하게 만들겠다고까지 말했다”고 했다.

폭행엔 김규봉 감독도 가담했다. 선수들은 ‘콜라를 먹어 체중이 불었다는 이유로 빵 20만원어치를 토하면서까지 먹게 한 일’ ‘견과류를 먹었다고 견과류 통으로 머리를 때리고 뺨과 가슴을 때린 일’ ‘복숭아를 먹고 살이 쪘다고 술자리에 불려가 맞은 일’ 등을 증언했다. 선수들은 “회식 때 어머니에게 뒤집어 엎는다고 협박하고 아버지에겐 다리 밑에 가서 싸우자고도 했다”며 “감독에게 인센티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국제대회 나갈 때마다 지원금 나오는 데도 80~100만원 가량 사비를 주장 선수의 이름으로 통장에 입금하길 요구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부당함을 느꼈음에도 제대로 문제제기하지 못한 체육계 내외부의 문제도 지적됐다. 주장 선수의 억압과 폭력이 무서웠지만 쉬쉬하는 분위기에 그게 운동 선수의 세상이고 사회인 건줄 알았단 것이다. 심지어 경찰도 이들의 편이 되진 못했다고 한다.

이들은 “경주경찰서 참고인 조사에서 담당 수사관은 ‘최숙현 선수가 신고한 내용이 아닌 자극적인 진술은 더 보탤 수 없다’며 일부 진술을 삭제했다”며 “어떻게 처리될 것 같냐는 질문에 벌금 20~30만원에 그칠 것이라 말하며 고소하지 않을 거면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벌금형 받게 되면 운동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대회장에서 계속 가해자 만나고 보복당할 것이 두려워 고소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진술인 조사 이후엔 훈련을 하지 못할 정도로 불안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들은 “경주시청에서 한 달에 10일 이상 폭행을 당했고 욕을 듣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하루하루 폭언 속에서 생활했다”며 “지금이라도 가해자들이 자신 죄를 인정하고 처벌이 제대로 이뤄져 모든 운동선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는 환경 구축 바란다”고 마지막 바람을 남겼다.

이번 사건을 함께 해온 이용 의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피해자 선수의 수는 8명에 이른다. 현재 고소를 한 2명의 선수 외에 2명의 선수가 추가로 고소에 나설 계획이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