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반(反) 한국 성향의 유력 여성 정치인
코로나19 재확산 와중에 치러진 일본 수도 도쿄도(都) 지사 선거에서 현직 고이케 유리코(67)의 재선이 확실시된다고 일본 언론들이 5일 출구조사 결과를 근거로 보도했다.
일본 NHK방송이 이날 오후 8시 투표가 종료된 직후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이케 지사는 60%에 육박하는 지지를 얻어 다른 후보들을 여유있게 따돌렸다. 고이케 지사는 이번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선거 기간 내내 사실상 여권 후보로 분류됐다.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자체 후보를 내지 않고 고이케 지사를 당 차원에서 후원했기 때문이다.
주요 야당의 지지를 받은 우쓰노미야 겐지(73) 변호사와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 인기를 끌었던 야마모토 다로(45) 레이와신센구미 대표를 비롯해 역대 최다인 22명의 후보가 이번 선거에 나섰지만 고이케 지사에게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변이 없는 한 고이케는 2016년 선거에서 도쿄 역사상 ‘첫 여성 도지사’에 오른 데 이어 ‘재선에 성공한 첫 여성 도지사’ 자리에 등극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여파 속에 치러진 이번 선거는 도쿄 주민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거리 유세 등 유권자와의 직접 만남이 어려운 상황에서 고이케 지사는 일찌감치 지난 3월말부터 매일 코로나19 대응 기자회견을 자청해 언론 노출을 늘렸다. 또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 하에 거리 유세 없이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온라인 선거운동에만 집중했다. 대대적인 미디어 공세 속에 선거 초부터 고이케의 낙승이 예상됐다.
아베 신조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소극적이라며 각을 세우고 도쿄도가 주도하는 적극적 방역 대책을 내놓은 점도 ‘고이케 재선’의 주된 발판이 됐다는 평가다.
재선은 유력해졌지만 이날 도쿄도에서 사흘 연속 200명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고이케 지사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녹록치 않다.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 개최 문제 역시 쉽지 않은 과제다. 고이케 지사는 출구조사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평소라면 만세를 부르고 하겠지만 상황이 심각해 그럴 때가 아니다”며 “코로나 제 2파동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대책을 확실히 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고이케는 참의원과 중의원 8선을 지낸 중견급 정치인이다. 내각에서도 방위상, 환경상, 오키나와·북방영토담당상 등을 역임하는 등 남성 중심의 보수적 문화가 강한 일본 사회에서 ‘유리 천장’을 깨뜨려온 대표적 여성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다만 고이케의 극우적 정치성향은 향후 한국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치 경력 내내 반한 성향을 드러내온 그는 지난 2017년부터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사를 보내는 일을 거부하고 있다. ‘원조 극우’라 불렸던 이시하라 신타로 전임 지사조차 지켰던 관례를 깨뜨린 것이다.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일본 우익 세력을 고려한 조치다.
도쿄에 제2 한국학교를 설립하는 방안과 관련해 부지 임대 계획을 백지화한 것, 환경상을 지냈던 2005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경력도 갈등 요인으로 떠오를 수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