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소녀상 ‘자리다툼’… 일단은 ‘코로나 휴전’

입력 2020-07-05 17:38
수요시위와 소녀상 철거 등을 요구하는 집회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인근에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보수단체 간 전례없는 ‘자리다툼’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정의연이 30년 가까이 수요집회를 이어온 자리를 보수단체가 선점하자 정의연은 집회장소를 옮겼고, 그러자 또 다른 보수단체가 그 자리까지 선점한 것이다. 그 사이 대학생 단체는 보수단체가 먼저 신고한 집회장소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발단은 지난 5월 25일 보수단체인 자유연대가 일본대사관 건너편 소녀상 인근에 1순위로 집회신고를 하면서 시작됐다. 이곳은 정의연이 28년간 수요집회를 해오던 곳이다. 결국 ‘후순위 신고자’가 된 정의연은 집회 장소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5일 “오랜 시간 수요집회가 진행된 곳이니 두 단체 간 합의를 시도했으나 결국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수요집회는 지난달 24일 원래 장소에서 20m 정도 떨어진 연합뉴스 사옥 앞으로 장소를 옮겨 실시됐다. 수요집회 시작 28년 만에 처음 자리를 옮긴 것이다.

정의연이 어쩔 수 없이 집회 장소를 옮겼지만 자리다툼은 해소되지 않았다. 또 다른 보수단체인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7월 29일부터 연합뉴스 사옥 앞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경찰에 먼저 신고를 하면서 정의연은 두 번째 집회장소마저 뺏기게 됐다.

경찰 관계자는 “연합뉴스 사옥 앞 자리는 선점 경쟁이 없던 곳이라 정의연은 여느 때처럼 일본대사관 앞과 연합뉴스 사옥 앞에 집회신고를 하려고 했는데, 공대위가 정의연보다 10분 먼저 와서 신청하고 갔다”고 전했다.

정의연은 어쩔 수 없이 제3의 수요집회 장소로 연합뉴스 앞 인도를 물색해둔 상황이다. 공대위가 오는 29일 연합뉴스 앞에 집회 신고를 한 이후 정의연은 옛 일본대사관 건너편, 연합뉴스 앞, 연합뉴스 앞 인도 세 군데에 집회 신고를 했다. 옛 일본대사관 건너편과 연합뉴스 앞은 후 순위로 남겨진 상태다.

보수단체의 자리선점에 대한 반발집회도 이어지고 있다. 대학생단체인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공동행동) 소속 회원 10여명은 지난달 23일부터 소녀상 주변을 점거하고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보수단체로부터 소녀상을 지키겠다며 소녀상에 몸을 묶고 시위를 진행했으며, 이날도 소녀상 주변에서 피켓을 들고 연좌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종로구청의 중재로 자리다툼은 당분간 휴지기를 가지게 됐다. 종로구청이 지난 3일 오전 0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감염병 위기경보 심각 단계가 해제될 때까지 일본대사관 일대에서의 집합행위를 모두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반한 집회 주최자 및 참여자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경찰도 구청과 협조해 집회가 금지된 지역에서 불법집회를 강행하면 해산을 명령하는 등 당분간 강력 대처할 예정이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