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이냐 봉합이냐’ 장고 들어간 윤석열

입력 2020-07-05 17:08
윤석열 검찰총장이 전국 검사장들의 의견을 토대로 법무부의 수사지휘 수용 여부를 고심하는 5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모습. 최현규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수용 여부를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 윤 총장의 결단에 따라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은 봉합될 수도,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지시 거부는 법 위반 소지가 있고, 지시를 따르려니 총장의 직무 유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게 윤 총장의 딜레마다.

윤 총장은 지난 3일 열렸던 검사장 회의 내용을 늦어도 6일 보고 받을 예정이다. 같은 날 지휘권 수용 여부와 관련한 입장을 낼 전망이다. 검사장 회의에서는 윤 총장이 재지휘를 건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추 장관의 지휘는 ‘검·언 유착’ 의혹과 관련한 전문수사자문단 절차를 중단할 것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독립적인 수사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검찰에서는 자문단 중단은 큰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문제는 윤 총장이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두 번째 지휘다. 검찰청법 12조는 총장이 검찰청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한다.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특임검사의 경우에도 직무 수행이 현저히 부당하면 총장이 중단시킬 수 있다는 최소한의 규정을 둔다. 추 장관의 지시는 아예 지휘·감독을 배제한 것이라 총장의 직무 유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검사장 회의 내용을 반영하면 윤 총장은 재지휘 건의를 선택할 수 있다. 검사장 다수가 위법성이 있다고 본 지시를 받아들이는 것은 윤 총장의 평소 소신과도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 윤 총장은 2013년 박근혜정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수사할 때 “상부의 위법한 지시는 따르면 안 된다”고 밝혔다. 총장이 수사에 손을 떼라는 지휘는 전례가 없었다는 점도 윤 총장이 고민하는 지점이다.

다만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황에서 추 장관이 재지휘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추 장관은 앞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위증교사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도 “(윤 총장이) 지시 절반을 잘라먹었다. 장관 말 들으면 지나갈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고 질타했다. 법무부는 3일 “수사팀 교체나 제3의 특임검사 임명 주장은 장관의 지시에 반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수사해야 한다는 명확한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또 추 장관은 윤 총장의 재지휘 건의를 사실상의 지휘 불이행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법무부가 총장에 대한 감찰 등에 착수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검사장 회의에서 일부 검사장은 “상황을 봉합하기 위해서라도 지휘를 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혼외자 의혹’이 제기된 채동욱 검찰총장을 감찰하겠다고 밝히자 채 총장은 사퇴했다.

추 장관의 지시에 부합하는 방안으로는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를 특임검사로 임명하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지시도 받지 않게 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법무부도 추 장관의 지시가 특임검사에 준하는 지시라고 풀이하고 있다. 다만 대검은 중앙지검 수사팀의 공정성에 의심을 품고 있어 이런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추 장관이 총장의 지휘권은 인정하되 수사 결과에 대해서 다시 지휘권을 행사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법원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런 때일수록 한 발씩 양보하는 게 필요하다”며 “강대 강의 대치는 파국만 불러올 뿐”이라고 말했다.



나성원 허경구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