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중국식 공안통치 시작됐다… 시위대 DNA 채취, ‘금서’ 조치도

입력 2020-07-05 16:20 수정 2020-07-05 17:11
지난 1일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를 벌이다 연행되는 홍콩 시민들.AP연합뉴스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면서 엄격한 사회 통제와 삼엄한 감시를 기초로 하는 중국의 공안통치가 홍콩에서도 시작됐다.

홍콩 민주화 인사들이 쓴 책들이 도서관에서 사라지고, 시위 도중 체포된 홍콩보안법 위반 사범들에게는 흉악범 대하듯 DNA 샘플 채취도 이뤄졌다. 홍콩의 국가안보 분야를 담당하는 국가안보처 수장에는 강경파 인사가 임명됐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 내 공공 도서관에서 ‘우산혁명’의 주역 조슈아 웡 등 홍콩 민주화 인사들의 저서가 모두 사라졌다. 홍콩보안법이 시행된지 불과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중국식 통제가 시작된 것이다.

공공 도서관을 관장하는 홍콩레저문화사무처는 “홍콩보안법 시행에 따라 일부 서적의 법 위반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슈아 웡이 쓴 ‘나는 영웅이 아니다’ 등 2권도 도서관에서 사라졌다.

웡은 “수년 전 발간된 내 책이 홍콩보안법으로 인해 도서관에서 사라졌다”며 “이러한 검열은 사실상 ‘금서(禁書)’ 지정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웡 외에도 홍콩 야당인 공민당 탄야 찬 의원이 2014년 발간한 ‘음식과 정의를 위한 나의 여행’, ‘홍콩 자치’를 주창해온 학자 친완의 저서 ‘홍콩 도시국가론’ ‘도시국가 주권론’ ‘홍콩 방어전’ 등도 도서관에서 사라졌다.

찬 의원은 이에 대해 “홍콩 기본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홍콩변호사협회 필립 다이크스 회장은 “공공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책들이 사라진 것은 경악할 일”이라며 “이는 정보를 추구할 수 있는 대중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콩 경찰은 보안법 시행 후 손님들이 식당 벽에 정부 비판 글을 써서 붙이는 포스트잇도 홍콩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홍콩의 한 식당에는 경찰 4명이 찾아와 “식당 내 포스트잇 내용이 보안법 위반이라는 신고를 받고 왔다”며 ‘법 집행’을 경고했다.

시위대를 지지하는 ‘노란 식당’들도 벽에 붙어있던 이러한 포스트잇들을 제거했다. 홍콩 내 노란 식당을 소개하는 스마트폰 앱도 앱스토어 등에서 사라졌다.

사틴 지역의 레티샤 웡 구의원은 경찰이 사무실에 찾아와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란 구호가 적인 플래카드를 철거하라고 요구하자 항의하는 뜻에서 이를 뒤집어서 걸어놓기도 했다.
지난 1일 시위대를 체포하는 홍콩 경찰.EPA연합뉴스

홍콩 경찰은 지난 1일 벌어진 시위 현장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10명을 체포했는데,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침, 머리카락 등을 통해 DNA 샘플을 채취해 흉악범 취급을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홍콩 법규에 따르면 경찰은 중대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유죄 입증에 DNA 샘플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DNA 샘플 채취를 명령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홍콩에서는 살인, 성폭행 등 죄질이 중한 범죄자들에만 DNA 샘플 채취가 이뤄졌다.

시위자 3명의 변호를 맡은 재닛 팡 변호사는 “DNA 샘플 채취는 성폭행, 마약 소지 등 중범죄자들에게만 적용돼 왔다”며 “우리는 이러한 경찰의 행태에 경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존 리 홍콩 보안장관은 “경찰은 사건 수사를 위해 DNA 샘플을 채취할 수 있으며, 이는 적법한 행동”이라고 반박했다.

홍콩 경찰은 홍콩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10명에게 국가정권 전복, 선동 등의 혐의가 적용됐으며,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장 10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초대 홍콩 국가안보처 수장으로 임명된 정옌슝.바이두캡처

한편 중국 정부는 홍콩 국가안보처 초대 수장에 강경파 인사인 정옌슝을 임명했다. 홍콩 국가안보처는 홍콩 안보정세 분석, 안보전략·정책수립 제안, 국가안보 범죄 처리 등의 직무와 권한을 갖는다.

정옌슝은 최근까지 광둥성 공산당 상무위원회 비서장을 지냈으며, 2011년 광둥성 산웨이시 당서기 재임시에는 토지수용 보상을 요구하는 우칸 마을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다.

그가 초대 국가안보처 수장으로 임명된 것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선전업무 경험이 있고 홍콩사무에 익숙한 강경론자를 원했고, 정옌슝이 광둥어에 능통한 점도 작용했다고 SCMP는 전했다.

베이징항공항천대학 톈페이룽 교수는 “시 주석이 승진시킨 인물들은 결정적 순간에 꿈쩍하지 않는다는 비슷한 이력을 갖고 있다”며 “정옌슝은 홍콩 매체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도하든 꿋꿋했고, 지도부의 신뢰를 얻었다”고 말했다.

국가안보처 수장은 일선에서 홍콩인들과 대화하고 홍콩 기관들과 연락해야 하는 자리여서 선전부 관리를 택했고, 광둥성 정보기관과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광둥성 출신의 정옌슝 낙점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콩 정부 산하에 구성된 국가안보수호위원회의 고문 자리는 뤄후이니 홍콩 주재 중앙정부 연락판공실 주임이 겸임하게 됐다. 그는 고문으로서 중앙정부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대변할 것으로 예상되고, 홍콩 주재 중앙정부 연락판공실의 역할도 강화될 전망이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