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추세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매일 아침 뉴스에서는 우리의 불편한 이웃 ‘코로나’가 등장해. 코로나와의 동거가 너무 자연스러워 이제는 붐비는 지하철과 버스, 기차를 타는 게 걱정조차 안될 지경이야.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그곳, 역은 과연 안전할까. 궁금한 건 못 참는 인턴기자 꿍미니가 방역체험을 해봤어. 하루 30만명이 이용하는 이곳. 한국 철도 역사의 산증인, 바로 서울역이야.
서울역 방역을 담당하는 ‘코레일 테크’ 직원과 함께 구석구석 직접 방역을 해보기로 했지. 코레일 테크는 한국철도공사의 계열사이자 국토교통부 산하의 공공기관이야. 쉽게 말해 전국의 KTX를 타는 모든 역의 방역과 청소는 이분들이 담당한다고 보면 돼.
이 구역 방역왕이 간다
방역 준비물 : 라텍스 장갑, 투피스 방역복, 고무장화, KF94마스크, 고글, 그리고 강인한 체력
지난달 22일 오전 9시 오전 10시. 안전교육을 마치고 반장님이 오늘 나와 함께할 노랑 분무기에 약품을 섞어줬어. 약품은 물 1ℓ당 소독제 15~20㎖, 65배로 희석시켜 줘야한대. 약품이 얼마나 독한지 냄새가 슬쩍, 코끝을 스쳤을 뿐인데 어지러울 정도야.
검은 방역복을 입고 어깨에 5ℓ들이 노란 분무기를 멨어. ‘요원’으로 변신한 뒤 역사 안을 누빌 준비를 했지.
내가 입은 방역복은 투피스 방역복. 겨울에는 의료진들이 입는 레벨D 방역복을 입다가 날이 더워지면서 투피스 방역복으로 바꿔 입게 됐대. 상의와 하의가 분리돼 그나마 낫다나. 근데 진짜? 에어컨이 빵빵 돌아가는 실내에 있는데도, 방역복을 입으니 땀복을 입은듯 후끈후끈. 마스크 틈 사이로 날숨이 나올 때마다 고글에는 김까지 서려 앞을 보기 어려웠지.
2인 1조로 검은 방역복을 입고 역사 안을 돌아다니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이 휙휙 돌아가더라. 흠칫 놀라고, 눈이 휘둥그레지고, 신기한 듯 뚫어져라 쳐다보고.
“네, 맞아요, 저 지금 굉장히 중요한 일 하고 있어요.”
외쳤어, 속으로만.
“실례합니다” 했는데 왜 안움직여?
시선을 잔뜩 받으며 당당히 시작했는데, 어라, 이거 생각보다 만만치 않더라. 서울역, 너 이렇게 넓었니? 출발 플랫폼인 1층부터 도착 플랫폼인 2층 대합실, 3층 역무실까지. 넓은 것만 문제는 아니었어. 진짜 골칫거리는 바로 사람들.
마침 기차 출발과 도착시간이 맞물린 탓에 에스컬레이터는 사람들로 한가득. 당최 언제 소독약을 분사해야 될지 감도 안 잡혔어. 멀뚱멀뚱 쳐다보기를 몇 분. 다시 눈치 보기 수십 번. 인파의 줄이 끊긴 틈을 타 소독약을 뿌렸어. 옆에 선 반장님이 마스크 아래로 슬쩍, 웃는 게 느껴졌어.
그래도 움직이는 사람은 쉬운 편이야.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나 승차권 자동발매기 앞에 서있는 사람들은 비킬 생각조차 하지 않더라. “실례합니다, 소독하겠습니다.” 몇 번이고 외쳤지만, 무시는 기본이었어.
벤치에 앉아 다리라도 들어 올리는 건 친절한 편에 속했어. 상당수는 그냥 무작정 모른 척. 그래도 소독은 해야 하잖아. 비켜줄 때까지 같은 말을 반복했어. 사람들이 원래 이렇게 불친절했나. 얼굴이 붉어졌어.
그러다가 아뿔싸! 소독약이 젊은 여성 승객의 신발에 튀고 말았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고 했지만 얼굴은 이미 일그러져 있었어. 약품이 뿌려진 곳을 만져보니 화가 나는 게 조금 이해가 갔어. 소독약이 묻은 곳은 찐득해지고 옷에 닿으면 변색도 된다고 해.
게다가 역사 바닥이 대리석이잖아. 소독약 때문에 바닥이 미끄러워지면 민원이 쏟아진대. 소독하다 조금만 튀어도, 먼지가 눌어 붙어도 그게 죄다 민원거리라는 거야. 다들 안전하자고 하는 일인데.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 눈치를 봐야하는 이 상황에 화가 났어.
“진짜? 쓰레기장을?” 현실 방역의 현장
낮 12시, 김이 서린 고글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어. 방역복 안 헐렁했던 티셔츠는 이미 쫄티로 변한지 오래. 1일 1헬스로 다져진 기초체력으로 버티고 있었어. 햇빛에 노출됐다면 아마 푹 찐 만두가 돼버렸을 수도.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였어. 역 시설만이 아니라 쓰레기까지 소독해야 했거든. 1층에 숨겨진 분리수거장으로 이동했어.
땡볕에 고작 몇분 있었을 뿐인데 머리가 익는 느낌이었어. 거기다 바람조차 통하지 않는 방역복을 입으니 온몸은 고온다습 열대우림. 음식물 쓰레기 냄새에 정신까지 혼미해졌어.
산처럼 쌓인 쓰레기더미를 향해 분무기를 연신 펌프질했어. 사람들이 쓰레기통에 마스크를 버리기 때문에 소독은 필수래. 계속되는 펌프질에 어깨가 뻐근해졌어. 몇번 하고 나니 반장님이나 아주머니 같이 나이든 분들이 이런 노동강도를 어떻게 버텨낼까 싶더라. 현장 방역을 담당하시는 분들의 평균 연령대가 58세 정도 된다고 해.
‘슈뢰딩거 변기’의 충격
오후 2시 무렵은 오전 소독조와 오후 소독조가 함께 하는 합동 방역시간이야. 합동 방역은 분무기가 닿지 않는 곳을 집중적으로 소독약을 묻혀 닦는 일이야. 아주머니 2명과 한 조가 된 나는 코레일 테크 가족만 입을 수 있는 조끼를 입고 소독약을 적신 걸레를 든 채 바로 출입문으로 향했어.
소독약으로 끈적일 수 있는 출입문 손잡이를 위 아래로 훑어가며 닦는데,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땀방울이 등을 타고 흘렀어.
아침에 뿌려놓은 소독약 때문이었을까. 승차권 자동발매기 앞에는 먼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어. 노란색 걸레로 한번 쓱 닦으니 먼지가 사람 때처럼 돌돌 말려 나왔어. 바닥에 붙은 검은 물때 자국도 골칫거리래. 소독약을 뿌리고 나면 그대로 굳어버리는 거지. 껌 떼는 칼로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
이제 화장실 차례야. 화장실은 전부 천으로 닦아줘야 해. 소독제를 분무기로 뿌렸을 때 대·소변기 표면에 달라붙은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퍼질 수도 있기 때문이야. 마스크 안으로 들어오는 역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꾹 참았어.
소독의 첫 타자는 대변기. 잠깐만,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대변기 뚜껑이 닫혀있어. 가끔 마주하는 이 ‘슈뢰딩거의 변기’는 언제나 그렇듯 등골을 오싹하게 하지. 눈을 질끈 감고 뚜껑을 열었어. 이 변기 속에는 대변이 있는 동시에 없고, 없는 동시에 있는 거야. 이런 양자역학과는 무관한 주문을 주절거리면서 말이야.
휴, 안심해도 좋아. 다행히 뒤처리가 깔끔하지 못했을 뿐 대형사고는 없었어. 다음에 사용할 사람을 위해 소독약에 적신 수세미를 변기에 대고 박박 문댔어. 잠깐 군대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던 때가 떠올랐어.
그 다음은 소변기. 아주머니들께서 매일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어. 깨끗한 소변기여도 어느 곳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코로나를 잡기 위해 손에 힘을 주고 닦아냈어. ‘문지를수록 더 안전하겠지’라는 마음에 ‘물’아일체가 돼 물이 튀어도 꾹 참았어.
마지막으로는 세면대야. 사람들이 손도 씻고, 이도 닦는 그곳. 수세미로 닦을 때마다 긁혀 나오는 물때가 한편으로는 내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지 뭐야. 청소를 지켜보는 동료 아주머니도 대견한 듯 칭찬해주셨어.
아주머니가 남은 대변기를 청소하다 말고 다급히 나를 불렀어. 이럴 수가. 당첨이야. 현장은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어. 아, 이런 또 생생하게 생각나버렸다.
이상하게도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대변기 물을 내리지 않고 도망가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늘었대. 물을 내릴 때 수압으로 생긴 미세 물방울에 바이러스가 공기 중으로 올라온다고 하더라. 그게 무서워 물을 안내리고 줄행랑 치는 이들이 늘어난 거지.
기가 찰 노릇이었어.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면 되는 것 아닌가. 혼잣말을 중얼거렸지. 뒷부분에 따라붙은 말들은 ‘삐’ 처리할게.
“우리가 뚫리면 전국이 뚫린다”
오후 5시. 그렇게 다사다난 했던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드디어 퇴근 전 티타임. 박스를 접어 만든 간이 찻상에 놓인 믹스커피, 참외, 초코과자. “오늘 욕봤죠?” 반장님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어.
이 분들 마지막 말도 너무 멋지더라. 다음에 서울역 가면 꼭 한번 곱씹어보길 바래.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일에 진짜 자부심을 느껴요. 서울역이 뚫리면 전국이 뚫리는 거잖아요. 여기는 우리가 딱 버티고 있으니까 걱정마세요.”
한명오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