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만큼이나 각종 현안으로 뜨거운 제주에 도지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
취임 2주년을 맞아 기자회견과 현장 답사로 후반기 도정 계획을 야심차게 알리는 타 자치단체장들과 달리 원희룡 제주지사는 일절 반구도 없이 7월 첫날 사실상 하계 휴가에 들어갔다.
코로나19 사태 중 처음 맞은 관광 성수기와 각종 인사, 조직개편, 끝날 줄 모르는 제2공항 논쟁 등으로 지역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서울행만 거듭하는 원 지사의 행보에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제주도민만 바라보고 일하겠다’던 원 지사가 달라진 건 5월부터다. 4·15 총선 후 미래통합당 선대위가 해산한 뒤부터 도외 출장이 빈번해졌다.
KBS가 제주도에 정보공개청구한 자료에 따르면 4월 20일부터 5월 28일까지 40일간 원희룡 제주지사의 도외 출장일은 17일. 이틀에 하루 꼴로 서울을 다녀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원 지사는 코로나19 합동브리핑에 간간이 얼굴을 내밀었다. ‘강남 모녀’와 같은 유증상 여행자에 소송으로 대응하겠다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날렸고, “제주는 코로나19 도피처가 아니”라며 방역수칙을 준수해달라고 호소하기로 했다.
하지만 총선 직후 보수파 주요 인사들이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론에서 갑론을박 하는 사이 원 지사의 몸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지난 5월 원 지사는 중앙 언론을 통해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이후 원 지사는 잦은 출장 중이다. 제주도청에서 원 지사를 만나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원 지사는 6월 이후 지역 언론과의 대면을 일체 거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2주년을 맞았지만 기자회견이나 입장 발표는 없었다. 이를 궁금해 한 지역 신문과 방송의 인터뷰 요청에 제주도는 계속해 거부의 뜻을 전하고 있다. ‘시간이 없다’는 게 이유다.
반면 인터넷 포털에는 매일 원 지사의 뉴스가 실리고 있다. ‘남다른 각오로 대권도전’ ‘나는 민주당에 져 본 적이 없다’ ‘담대한 보수의 유전자’ 등 대부분 정치인으로서 그가 내뱉은 말들이다.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정치 행사와 사회 강연, 라디오 방송 등에 출연하며 대권 주자로서 연일 종횡무진하고 있다.
그러나 도민들은 정작 궁금한 내용을 들을 수 없다. 당선과 함께 ‘협치’를 강조했던 지사가 의회의 부적격 판단에도 ‘음주운전’ 김태엽 서귀포시장을 왜 임명했는 지, 제2공항 논쟁이 막바지에 와 있지만 제주도에 여전한 찬반논란을 어떻게 처리할 건 지, 코로나19 와 본격적인 휴가철 사이에서 제주도의 대응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 지 제주엔 현안이 산적하다.
원 지사는 2018년 도지사 출마를 선언하면서 “제주도지사와 중앙 정치,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 욕심을 냈던 적도 있었다”며 “이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다. 제주도지사 일에 전념하겠다.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같은 해 취임 기자회견에서도 “제주도민만 바라보겠다. 도정에 전념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하지만 이제 원 지사는 “대선에 모든 걸 걸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지사가 집무실에 도착하면 서류 무더기를 챙겨 계단을 뛰어다니는 국장들을 볼 수 있다”며 “이들의 잰 걸음이 누구를 위한 건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