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살려줘….” “먼저 가도 되냐.” “행복하고 싶다.”
전직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선수 고(故) 최숙현(23)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주변 친구에게 어려움을 토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주시청 지도자와 선배들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며 생긴 정신과적 증세로 약을 복용하고 수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최씨가 처한 상황은 내내 위태로웠다. 최씨는 올해 초부터 여러 기관을 통해 피해 상황을 알렸지만 그가 맞닥뜨린 건 ‘무응답’ 뿐이었다. 결국 최씨는 23년의 짧은 생애를 외롭게 마감했다.
최씨의 고향인 경북 칠곡에서 중학교 시절부터 8년 동안 친구로 지낸 전 고교 동창 추모(23)씨는 2일 국민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숙현이가 지난 6월 중순까지 매일같이 울면서 하소연했다. 나에게 ‘같이 죽자.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고 말할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추씨에 따르면 최씨가 힘들다는 말을 처음 꺼낸 시점은 2016년 2월부터다. 당시 최씨는 경주시청에 공식적으로 입단하기 전 팀과 함께 뉴질랜드 전지훈련을 다녀왔고, 이때부터 가해자들의 폭행과 폭언이 시작됐다.
추씨는 “숙현이가 실업팀에 입단한 뒤부터 대인기피증, 우울증, 공황장애까지 앓고 약을 복용했다”며 “죽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항상 ‘올해만, 이번 주만 버티고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고 흐느끼며 말했다.
추씨가 최씨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한 카카오톡 대화엔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는 글로 가득했다. 최씨는 지난해 4월 11일 오전 2시쯤 추씨에게 “또 공황(장애) 왔다. 약 먹었는데… 나 좀 살려줘”라고 토로했다. 추씨가 “숙소 밖으로 나가라”고 조언했지만, 최씨는 “숙소생활 해서 선배도 있어서 못 나가…누가 끄집어내줬으면 좋겠다. 그냥 포기해야겠다”며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하지”라고 답했다.
지난해 9월 20일엔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도 있었다. 최씨는 오후 10시쯤 추씨에게 “나도 뛰어내릴까 고민 중. 먼저 가도 되냐. 장례식장에 와서 육개장은 먹고 가달라”고 했다. “감정이 없었으면 좋겠다”거나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씨는 경주시청에서 뿐 아니라 남자친구로부터 데이트 폭행에도 시달렸던 걸로 드러났다. 최씨는 지난해 12월 추씨에게 “남자친구에게 맞았다. 팔에 멍 다 들고 목도 졸라서 빨개졌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새해를 맞아 추씨에게 “조금만 더 살아보자 언젠가는 빛 볼 날 오지 않겠냐”는 메시지를 보냈던 최씨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최씨는 지난 4월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폭력행위를 신고하는 등 여러 루트로 피해 상황을 알렸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오히려 가해자들은 경주시청 소속 선수들에게 ‘최씨가 원래 정신병이 있었다’거나 ‘폭력을 본 적이 없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에 최씨는 지속적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추씨는 “올해 부산에서 만났을 때 팔목에 자해한 흉터를 보기도 했다”고 했다.
수습은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된 뒤에야 이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게 전반적인 스포츠 인권 문제를 챙기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신고한 날이 4월 8일이었는데도 제대로 조치되지 않은 건 정말 문제”라며 “재발하지 않게 철저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주시체육회도 이날 운영위원회를 열고 가해자 감독과 선수들을 대상으로 경위를 조사했다.
추씨는 이날 최씨의 유골이 보관된 납골당을 찾았다. 추씨는 “새벽에 가위가 눌려서 울며 전화한 숙현이의 하소연이 아직도 생각난다”며 “숙현이가 고생하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만큼 가해자들이 무거운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족이 최씨의 사망 하루 전날까지 국가인권위원회에 사건을 진정한 사실도 국민일보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인권위 관계자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지난달 25일 최씨와 관련한 진정이 들어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씨는 진정이 들어가고 하루 뒤에 생을 마감했다. 대한철인3종협회 관계자는 “해당 진정은 최씨 가족을 대리한 법무법인에서 인권위에 넣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 2월에도 최씨와 관련한 진정이 인권위에 제기됐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 진정 역시 최씨의 가족이 넣었다. 하지만 최씨가 가해자를 경찰에 형사고발을 하겠다고 해 각하 처리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위 관련법 이외 특별법 등 다른 법률로 구제 조치가 이루어진 경우 각하하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유족은 최씨의 생전에 백방으로 피해사실을 알리기 위해 애썼다. 2월 인권위 진정 뒤에도 3월 경찰 형사고소, 4월 초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등에 징계신청서를 넣어 가능한 한 모든 관련 기관에 방법을 알아봤다. 최씨는 사망 나흘 전인 지난달 22일에도 소속 협회인 대한철인3종협회에 진정을 넣었다.
협회가 최씨의 장례식장에서 사건 관련자들에게 입단속을 시켰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대해 협회는 “2~3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협회는 6일 이번 사건과 관련한 스포츠공정위원회를 개최한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 희망의 전화 ☎129 / 생명의 전화 ☎1588-9191 /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동환 조효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