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줍’하고 싶은 분들에게 전합니다 [개st하우스]

입력 2020-07-04 14:00

[개st하우스]는 인간과 동물의 행복한 공존을 담는 공간입니다. 즐겁고 감동적인 동물 이야기가 고플 때마다 찾아오세요.

길을 걷다 개, 고양이를 마주한 적 있나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생각이 많아질 거에요. 도움이 필요한가? 먹을 것을 줄까? 동물단체에 요청할까, 아니면 집에 데려가도 될까? 결국 아무런 조치도 못하고 뒤돌아선 경험이 떠오릅니다.

어느 하나 선뜻 고르기 어려운 이유는 순간의 선택에 따르는 책임의 무게가 두렵기 때문이겠죠. 그중에서도 동물을 집에 데려오는 ‘줍줍’의 책임은 얼마나 무거울까요?

이번 개스트하우스 제보자는 냥줍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할 사연이 있다고 하네요. 오늘도 안방 침대 위에서 노릇노릇 식빵을 굽는 치즈냥이 ‘럭키’는 2년 전에는 추운 겨울을 넘기기 힘든 아픈 길냥이었다고 합니다. 사랑스러운 오늘이 있기까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들어봤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2018년 늦가을

2018년 늦가을, 서울 영등포구청 옆 아파트 단지. 친구와 냥이 급식소를 운영하던 제보자는 길고양이 한마리를 만나게 됩니다.

한눈에도 꾀죄죄한 몰골의 노란색 치즈냥이. 온몸은 상처투성이에 뼈만 앙상해서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8~9살쯤 돼 보이는 녀석은 사람 나이로는 40~50대 정도지만 오랜 길바닥 생활에 잔뜩 늙어버렸습니다. 딱딱한 사료는 피하고 부드러운 통조림만 핥길래 제보자가 살펴보니 구내염을 앓아 이가 모두 상했더랍니다.

2018년 12월 구조 직후 럭키의 앙상한 모습.

제보자는 행운이 가득하길 바란다며 고양이를 럭키(Lucky)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럭키’하지 않았습니다. 한겨울인데 고양이 급식소를 당장 없애라는 민원이 이어졌습니다. 늙고 아픈 럭키로서는 이번 겨울을 넘기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방법은 구조밖에 없는데 고가의 치료비가 걱정이었습니다. 제보자는 원생 10명 정도에 불과한 소규모 어린이집 교사. 100만원을 훌쩍 넘는 동물 병원비가 부담스러웠습니다. 보호공간도 문제였죠. 함께 사는 부모님이 동물을 싫어해서 럭키를 집에 데려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름 덕분일까요? 때맞춰 럭키에게 행운이 찾아옵니다.

동물보호단체에서 길고양이 치료비 지원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상태가 심각한 럭키는 이 프로젝트에 지원해 3차례의 수술과 요양 비용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약 150만원을 지원받았습니다. 더 큰 걱정이었던 보호공간도 마련됩니다. 마포구청 동물보호과의 도움으로 구청 유휴공간에 3마리 정도 쉬다갈 임시공간이 마련됩니다.

럭키가 1년여 머문 서울 마포구청의 동물 임시보호공간. 제보자는 출퇴근 앞뒤로 매일 2차례 럭키를 돌보러 다녔다고 한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12월 어느날, 제보자는 럭키 구조에 나섭니다. 아파트 벽면에는 포스터를 붙였습니다. ‘생명이 위급한 고양이가 있습니다. 잡을 때까지만 포획틀을 놓겠습니다.’

녀석과의 숨바꼭질이 시작됩니다. “럭키야” 맛있는 간식으로 유혹하며 애타게 부르기를 한달여. 드디어 제보자는 럭키를 포획하는 데 성공합니다. 럭키는 기다렸다는 듯 제보자 손에 얼굴을 부볐습니다. 하악질이나 발톱질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한달여 시도 끝에 럭키를 구조한 제보자가 포획틀을 끌어안고 울고 있는 모습. 제보자 제공

럭키의 구내염은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구내염은 잇몸, 치아, 혓바닥 등 입안이 온통 붓고 찌를 듯이 아픈 질병입니다. 치료하려면 최소한의 방어용인 송곳니를 제외한 모든 이빨을 뽑아야 하죠.

구조돼 입원한 럭키.

게다가 럭키의 몸무게는 2.8kg. 보통 성묘의 반도 안 되는데 염증이 걸린 심장이나 신장은 오히려 평균보다 컸습니다. 이런 체력으로는 수술을 버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수의사는 “럭키를 3kg까지 만들어오라” 말했습니다. 살을 찌워라! 비상이 걸렸습니다. 다행히 수액을 맞고 기운을 차린 럭키는 이후 먹성 좋은 식탐냥으로 돌변했고, 금세 확찐냥이 됐습니다. 사료면 사료, 캔이면 캔 진공청소기처럼 다 받아먹었다고 하네요.

이듬해인 2019년 1월, 몸무게 3kg이 된 럭키는 전신마취에 들어갑니다. 우려했던 수컷 중성화수술, 구내염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딱한 사연을 알게 된 수의사의 도움으로 치료비 30% 할인, 약을 무료로 얻습니다.

정성어린 돌봄을 받아 럭키는 기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수술을 마친 동물들에게는 보통 넥카라를 씌운다. 습관처럼 핥다가 수술 부위가 덧나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다.

이후 럭키는 3평 남짓한 구청 보호소에서 요양합니다. 사고당한 동물, 버려진 동물, 부상이 심각한 동물들이 머무는 그곳은 아늑한 곳은 아닙니다. 미안한 마음에 제보자는 매일 출퇴근 전후 2차례 럭키를 찾아가 밥을 주고 시설을 청소해줬다고 합니다.

귀여운 동네고양이 친구도 생겼습니다. 보호소 창문 너머로 럭키와 옹알이를 주고받던 2개월령 동네 고양이가 어느 날은 방충망을 뚫고 들어오더니 종종 럭키 품에 안겨 놀다 갔다고 하네요.

보세요. 아래 사진 속 이 친구가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눈 럭키의 동네 친구입니다.

럭키가 좋다고 모기장을 뚫고 들어온 2개월령 동네 고양이. 집념이 대단한 이 녀석도 이후 다른 집으로 입양갔다고.

그리고 1년 남짓 시간이 흐른 지난 2월. 제보자는 드디어 원룸을 얻어 럭키를 데려왔습니다. 마침내 한 가족이 됐습니다. 럭키를 위해 부모님 집에서 나와 독립까지 감행한 겁니다.

제보자는 럭키에게 아주 조금씩 다가갔습니다. 등을 쓰다듬기까지 1주일의 시간을 들였습니다. 처음에는 칫솔을, 다음에는 고무장갑 낀 손을, 럭키가 편안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제야 맨손을 내밀었습니다.

럭키에게 닿기까지. 낯선 손길에 놀랄까 걱정했던 제보자는 조금씩 럭키에게 다가갔다. 목욕 솔, 비닐장갑을 거쳐 마침내 맨손을 내밀었다.

제보자는 어린이집 아이들에게도 럭키와 교감하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여러분, 제일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에요.”
“우리보다 작은 동물이 먼저 다가오도록 이해하고 기다려줘야 해요.”

덥썩 만지고 싶은 마음이 컸을 법한데, 어린이집 아이들도 럭키가 다가오기를 차분하게 기다렸다.

보통 반려동물을 선택한다면 어리고 예쁜 동물을 찾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럭키는 11살 고양이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넘겼을 나이죠. 제보자는 어째서 아프고 나이도 많은 럭키를 가족으로 맞았을까요.

“럭키의 홑꺼풀 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슬퍼진다고 할까, 애잔해져요. ”

홑꺼풀 눈빛이 애절한 럭키.

처음에는 구조하고, 치료하고, 보호소에 데려준 것으로 “내 역할은 다했다” 안도했다네요. 그것만도 대단한 일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구조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럭키는 어느 하나 부탁한 적 없으니까요.

“저는 이 고양이의 삶에 개입했어요. 밥을 준 것도, 구조하고 치료한 것도, 이 집에 데려온 것도 럭키의 선택이 아니에요. 끝까지 책임져야죠.”

구청 보호소 시절, 럭키는 제보자의 발소리만 들려도 울어댔다고 합니다. 그 모습에 제보자는 “보호소보다 아늑한 공간에 데려가고 싶다”고 다짐했답니다.

물론 책임감, 연민만은 아닙니다. 시간이 쌓여 제보자는 럭키와 교감하고 있다네요. 서로의 온기와 손길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반려 관계가 된 거죠.

럭키는 사람의 따뜻한 손길을 좋아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동네 고양이와 교감을 원합니다. 밥을 주거나, 동물단체에 신고하거나, 포획해서 치료해주거나, 입양하고 싶어하죠. 그런데 제보자는 어느 하나 쉽게 결정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구조할 수 있죠. 단 그 동물의 평생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시민단체에 구조 신고만 하거나 잠깐 밥만 줄 생각이라면, 아예 손대지 않는 게 나아요. 꾸준할 수 없다면 괜히 그 동물 삶에 개입해서 괴롭히는 일이에요.”

럭키의 세상 얌전한 모습

푹신한 담요 위에 웅크린 럭키를 보며 제보자는 말합니다.

“럭키야 미안해. 내가 괜히 구조해서. 대신 최대한 자유를 주고 책임질게.”






영상, 글=이성훈 기자, 변정연 인턴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