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위계질서가 다툼을 줄인다.

입력 2020-07-02 09:15

7살 여자 아이인 K는 2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동생이 태어난 직후엔 동생을 신기해하며 예뻐하고 안아주고 했다. 동생이 두 돌이 지나면서는 동생을 몰래 꼬집어 멍이 들게 하고 쥐어박기 시작했다. 또 얼마 전 부터는 동생이 하는 행동마다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하거나 트집을 잡아 동생과 싸우는 일이 허다했다. 이럴수록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은 원인 제공 한 K를 야단치니, K는 차츰 짜증도 늘고 반항이 심해져 갔다.

동생을 봤을 때 큰 아이가 적응하기 힘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다. 큰 아이들은 동생을 원했던 경우가 많으므로 처음엔 동생을 예뻐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간다. 하지만 동생이 수동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고 재롱을 부리거나 예쁜 행동을 하면서 어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사랑을 빼앗길 것에 대해 불안해하기 시작하며,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요즘엔 외동아이로 자라면서 온갖 관심을 독차지 하다가 동생을 보는 아이들이 많다 보니 동생과 사랑을 나누는 것에 더욱 적응하기 어렵다. 또 예전 어른들은 형이나 누나를 손위 형제로서, 장자, 장녀로 대접을 해주고 형제 자매 간에도 위계나 질서를 잡아주려는 노력 해주었기 때문에 형제자매간의 다툼이 덜했을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의 부모들은 형이나 누나 역할을 강요면서 양보하고 참으라고만 하고, 막상 위계를 잡아주는 데는 소홀한 경우가 많다. 즉 형제 자매간에는 뭐든지 똑같이 평등하게 키우려고만 한다.

그런데 이것이 형제간의 경쟁심을 부추겨 다툼이 늘어나게 하는 경우가 많다. ‘형이나 누나는 덩치가 크니 사과 하나를 나누어 먹어도 정확히 반쪽 보다는 조금 더 먹게 하는 것’ ‘동생보다는 형이나 누나를 먼저 먹게 하는 것’ 등 위계질서를 잡아주어 동생이 형이나 누나를 함부로 깔보거나 덤비지 못하게 해야 한다.

특히 형이나 누나가 다소 부족한 면이 있는 아이일수록 동생과 비교해서 “넌 왜 동생만도 못하냐?” “일곱 살짜리가 아기처럼 행동하니?”하는 무심코 부모가 내뱉는 말들을 조심해야 한다. 손위 아이의 위신을 깎아 형제간의 질서를 깨뜨려 다툼을 늘게 만들 수도 있다.

K가 누나로서 동생을 계속 졸졸 따라다니면서 잔소리하는 행동은 동생 입장에서는 자기를 괴롭히는 것으로 느낄 수 있지만, K는 좋은 의도로 동생을 돕고 가르치는 등 누나의 역할을 하려는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여자 아이들은 비록 동생을 미워하고 질투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동생을 보살피고 돌보려고 하는 성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동생을 돌보는 행동이 K처럼 부정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이전의 아이들은 아직은 매우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시기인지라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킬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여 상대가 싫어하더라도 행동이 잘 교정되지 않는다.

이럴 때 큰 아이를 너무 나무라지 말고, ‘누나 역할을 하려 하는 점’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동생이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을 생각해 보도록 말해주자. 그리고 부모 자신이 K가 하는 행동처럼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잔소리하고 사사건건 가르치려고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 아이들은 부모 행동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