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극 선두 자리를 지키며 1일 종영한 MBC 드라마 ‘꼰대인턴’의 인기 비결은 아마도 기존 직장 드라마와는 다른 문제를 짚었기 때문 아닐까. 지금까지 직장 내 노동을 다뤘던 작품은 대부분 고용실태나 부당해고, 노동착취 등 구조적 문제에 집중했지만 이 작품은 괴롭힘 영역에 집중했다. ‘꼰대인턴’에서는 상사의 막말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더이상 미덕이 아니었고, 밤낮없이 일에 몰두하는 건 열정이 아니었다. 다만, ‘꼰대’를 단순히 악역으로만 그리지 않았다. 박해진은 최근 국민일보와 만나 “우리 드라마를 보고 세대 간 소통의 문이 열리길 바란다”며 “서로의 탓만 하지 말고 속 시원히 대화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 박해진과 극 중 가열찬의 모습은 얼마나 닮아있나요.
“열찬은 좋은 사람이라기보다 좋은 사람이고 싶어하는 사람이에요. 보통의 사람이죠. 참다 참다 폭발하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인간미가 보이는데, ‘워너비’ 상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랄까, 그런 게 비슷한 것 같아요. 전 겁이 많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혹시 ‘꼰대’같지는 않을까? 고민하고 걱정해요. 누가 제게 ‘꼰대스러운’ 말을 하는 걸 싫어해서 저도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드라마를 하면서 여러 소통 창구를 마련했는데, 특히 ‘고민상담소’가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었나요.
“어느 임신부의 사연이 기억에 남아요. 출산 휴가를 쓸 수 없게 하는 상사의 이야기였죠. 이런 경우가 되게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 상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하면 회사가 더 인정해줄까요?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식(김응수)의 경우에도 회사에 간과 쓸개를 다 빼줬지만 결국 쫓겨났어요. 결국 중요한 건 자신의 삶이고, 동료의 인생이에요. 일과 회사 그리고 성과에 사로잡혀서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삶을 지키고 동료의 삶도 존중하면서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코믹연기 도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코믹한 캐릭터는 자칫 과해 보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조심스러웠는데 오히려 뻔뻔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쑥스러워하는 순간 시청자도 부끄러워질 것 같았거든요(웃음).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매 작품 에너지를 다 쏟았어요. 하지만 열찬을 연기하려면 조금은 내려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모습과 가장 비슷한 캐릭터였고 힘을 빼야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올 것 같았거든요. 사실 열찬은 웃기다기 보다는 찌질함에 가깝죠. 또 상황 자체가 웃길 뿐 열찬이 웃긴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만식에 대한 열찬의 솔직한 감정은 어땠을까요.
“처음에는 앙숙이었지만 점점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도 보였던 것 같아요. 미워하지만 의지하는 모습도 많거든요. 만식이 해결해주는 사안도 적지 않았고요. 이런 걸 미운 정이라고 하죠? 열찬을 연기하다 순간 그 안에서 만식을 보곤 했어요. 결국 만식을 따라 하면서 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고요. 다만 열찬이 줄곧 ‘만식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것은 아니에요. 만식을 볼 때마다 상처받았던 기억이나 아픔이 자꾸 떠오르니까 그게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만식과의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밀크티 장면이요(웃음). 아직도 대사가 다 기억나요. 대놓고 PPL(간접광고) 하는 식이었지만 극에서는 신(新)문화에 익숙한 젊은 상사가 나이 많은 직원을 괴롭히는 장면으로 재치있게 표현된 것 같아 만족해요. 제가 흔들어달라고 요구했는데 만식이 능청스럽게 보란 듯이 흔들어서 공손하게 건네더라고요. 놀랐어요. 퉁명스럽게 흔들어 툭 내려놓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와, 역시 내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꼰대인턴’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면 좋겠나요.
“소재 자체로도 후련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사이다’ 같은 통쾌함이 우리 드라마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면서 ‘그러니까 세대 간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처음부터 ‘꼰대’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드라마를 보면 ‘꼰대’가 돼가는 과정을 알 수 있어요.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죠. 그러니 서로를 탓하지 말고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고 조심하면서요. 어른들이 조심해야 할 점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젊은 친구들도 어른들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오래 인생을 살아왔으니 경험치가 쌓인 분들이에요. 배울 점이 있다는 의미죠. 점점 설 자리가 줄어드는 시니어를 배려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요.”
-좋은 상사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잘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이 ‘꼰대’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는데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내 말이 무조건 맞아’라고 강압적으로 지시하는 거죠. 상사라면 부하직원에게 지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설득하는 방식이면 좋겠어요.”
-‘꼰대인턴’은 스스로에게 어떤 작품이었나요.
“요즘 시대에 맞는 작품이어서 좋았어요. 저도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촬영하면서 ‘이 장면은 이대로 괜찮을까’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하지만 시청자는 그런 장면을 유독 좋아하더라고요. 그만큼 사회가 변했고 구성원의 생각도 다양해졌어요. 모두가 함께 더불어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