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까 무서워” 마스코트 ‘까오’의 코로나19 생존기

입력 2020-07-03 06:00 수정 2020-07-03 06:00
프로축구 K리그 성남 FC 마스코트 까오가 지난달 25일 경기도 성남 탄천종합운동장 관중석에 홀로 쭈그려 앉아 있다. 성남=윤성호 기자

“정말…너무 외로워요.”

가랑비가 내리던 지난달 25일, 경기도 성남의 탄천종합운동장 텅 빈 관중석에서 만난 마스코트 ‘까오’의 목소리는 쓸쓸했다. 예년 시즌과 다를 바 없는 큼지막한 인형탈이었지만, 커다란 눈망울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맺힐 것만 같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프로축구 K리그의 경기장 관중 입장이 금지된 지 약 한 달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아무도 없는 홈 관중석에서 그는 짝꿍 ‘까비’와 단둘이 매 경기 팬들을 대신해 선수들을 응원해왔다. 인형탈 속 사람이 누군지는 구단 직원들밖에 모르는 극비사항이다. 목소리를 들은 사람도 몇 없다.

까오는 프로축구 K리그1 구단 성남 FC의 마스코트로 일한 지 올해 4년 차다. 경기가 없는 날은 성남 시내 야탑광장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경기 날은 홈구장인 탄천종합운동장의 관중석에서 팬들과 어깨동무하며 선수단을 응원하는 게 그의 일과였다. 시내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아이들을 예고없이 찾아가 경기장에 놀러 와달라 초대하는 일도 즐거웠다. 선수의 이름 대신 까오 두 글자를 성남의 선수복에 적어넣고 아이처럼 자랑하던 어른 팬들과, 훌쩍 키가 커서도 자신을 기억하며 반가워하는 꼬마 팬들이 그에겐 무엇보다 소중하고 감동적인 존재다. 성남의 팬 페이지에는 까오가 활동한 모든 장면을 팬들이 모아놓은 사진첩도 있다.
프로축구 K리그 성남 FC 마스코트 까오가 지난달 25일 경기도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의 텅 빈 관중석에 홀로 누워 있다. 성남=윤성호 기자

코로나19 사태는 이 모든 일상을 바꿔놨다. 요즘 경기장 관중석에서 까오는 서포터즈의 응원 소리를 흉내 낸 전자음에 맞춰 몸을 흔들고, 성남 선수들이 골을 터뜨릴 때마다 팀 엠블럼이 그려진 깃발을 열심히 흔드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는 “그나마도 머리보다 팔이 짧아서 깃발을 화려하게 흔들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팬들을 직접 만나러 공공장소에 나가고 싶지만 인파가 모이기라도 하면 전염병 전파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에 어렵다. 갖은 아이디어를 짜내 구단 SNS 영상에서라도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일명 ‘코로나 시즌’이 개막한 이후 까오가 직접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구단 직원들뿐이다. 올 시즌 구단의 스타 유망주로 떠오른 ‘홍시포드’ 홍시후도, K리그 500경기 출장 대기록을 세운 국가대표 출신 골키퍼 김영광도, 넘치는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김남일 감독도 개막 이후에는 만나보지 못했다. 까오는 “감독님과는 취임하시는 자리에서 만나 자기소개를 했던 게 마지막 만남”이라면서 “가끔 구장에서 선수단이 훈련할 때도 먼발치에서 바라볼 뿐 직접 다가갈 수가 없다. 훈련장에도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가 방송 중계될 때면 카메라에 잡히려고 갖은 애를 쓴다. 최대한 팬들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서다. 까오는 “이번 시즌 평소에는 본래 서포터즈의 자리인 골대 뒤 가변석 쪽에 앉아 있지만, 카메라 방향 때문에 촬영기사들의 이목을 끌기 힘들어 일부러 맞은 편 아무것도 없는 관중석으로 가서 춤을 춘 적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 내내 열심히 움직여 하이라이트 영상에라도 나오면 다행이다. 영상에 ‘까오다’ ‘까오 살아있네’ 하고 팬들이 댓글을 달아주면 혼자 찾아보고서 기뻐하기도 했다.
프로축구 K리그 성남 FC 마스코트 까오가 지난달 25일 경기도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탁 트인 잔디를 배경으로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성남=윤성호 기자

인터뷰 사흘 뒤인 지난달 28일, 문화체육관광부는 프로축구를 포함한 프로스포츠에 제한적 관중 입장을 허용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다음 홈경기가 있는 25일부터는 팬들을 관중석에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다만 띄엄띄엄 거리를 두고 앉을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악수를 할 수도, 옆자리에서 승리의 만세를 부르기도 어려울지 모른다. 이 모두 여태까지의 무관중 경기처럼 겪어보지 못한 일이지만, 당장 까오에게는 팬들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해 보였다. “반갑고 기다렸다고, 외로웠다고, 또 보고 싶었다고 전해주세요”라고 까오는 말했다.

성남=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