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발의 무려 2.2만건 실효성 논란 “입법 품질 관리” 요청

입력 2020-07-02 06:00 수정 2020-07-02 06:00
21대 국회의원 배지. 뉴시스

21대 국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입법영향평가제’ 도입 목소리가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국회 법안 발의 건수가 급격히 늘고 있지만 법안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 않아 부작용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일 국회 제언집에서 “주요 선진국처럼 법안을 심의할 때 경제·사회의 각 부문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는 내용의 입법영향평가제를 시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대 국회 의원발의(위원장 발의 포함)는 2만1942건으로 역대 최대였다. 이는 미국(1만8636건)이나 독일(906건)보다 월등히 많다. 20년 전인 15대 국회 의원발의는 1566건에 불과했다. 20년 만에 10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발의가 많은 것은 국회의원이 그만큼 열심히 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의원 발의 법안을 제대로 심사하기 어려운 여건이란 것이다. 정부 발의 법안은 규제개혁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치지만 의원 발의 법안은 입법영향 평가 절차가 없다. 거기다 입법을 지원하는 국회 입법조사처 인력과 예산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적다. 한국은 직원 126명에 예산 147억원으로 미국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1대 국회 개원을 이틀 앞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전경. 뉴시스

주요 선진국은 의원 발의 법안에 대해 발의 전이나 후 심사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미국, 프랑스, 독일은 발의 후 각각 국회, 사법기관, 정부가 법안이 미칠 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가지 영향에 대해 검토한다. 영국은 심지어 발의 전·후에 정부·국회·독립기관이 각각 심사를 한다. 한국은 의원입법에 대한 절차가 없기 때문에 종종 현장과 괴리가 큰 법안이 발의되거나 통과된다.

재계 관계자는 “입법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법안대로 입법될 경우 실효성이 거의 없거나 부작용이 매우 큰 ‘황당’ 법안이 나온다”고 했다.

예를 들어 19대 국회에선 디지털 열쇠 보편화에 역행해 열쇠관리사를 국가자격증으로 만드는 법안이 발의됐다. 20대에서 통과된 ‘n번방 사건방지 후속법안’은 네이버 등에 불법 촬영물 차단 의무를 부과했지만 텔레그램 등 해외 사업자 단속은 사실상 불가능해 업계에선 실효성 없는 법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입법 품질’ 제고를 위해 법안 심의 시 사회 각 부문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는 내용의 입법영향평가제도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힘을 받고 있다. 대한상의는 “상임위 심사 단계에서 입법 영향 평가서 첨부를 제도화하고, 평가서 작성을 국회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가 담당하도록 하면 입법권 침해 소지도 없애고 법안 심사도 충실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국가 입법영향평가제 현황>

평가여부
평가시기
평가기관
미국

발의 후
국회
영국

발의 전·후
정부·국회·독립기관
프랑스

발의 후
사법기관
독일

발의 후
정부
일본
X
·
·
한국
X
·
·
자료: 대한상공회의소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