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코로나 치료제 ‘렘데시비르’ 싹쓸이… 7∼9월 생산량 독점구매

입력 2020-07-01 16:5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15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우주군기(旗) 공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치료제로 주목받는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의 생산 물량 대부분을 구매하기로 했다. 미국이 팬데믹을 틈타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3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향후 3개월간 예정된 렘데시비르 생산량을 사실상 독점 구매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렘데시비르를 개발한 길리어드 사이언스는 최초 생산 물량 14만인분을 세계 각국에 임상시험 등 용도로 공급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향후 3개월치 생산 예정 물량인 50만인분 이상을 구매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7월 생산분 전부와 8~9월 생산분의 90%에 달하는 물량이다.

알렉스 아자르 미 보건복지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들이 코로나19 치료제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아주 멋진 계약을 성사시켰다”며 “정부는 모든 미국인이 원할 때 언제든 렘데시비르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치료제를 독점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가 렘데시비르를 대규모로 매입한 배경에는 나날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미국의 팬데믹 상황이 있다. 현재 미국은 일일 신규 확진자 4만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앤서니 파우치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이날 “미국에서 하루 10만명씩 새로 확진자가 나와도 놀랍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미국의 이러한 태도를 두고 “팬데믹을 틈타 미국이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팬데믹이 시작된 이래 미국의 자국 우선 정책이 시행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에는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가 “미국은 위험부담을 안고 치료제 개발에 투자한 만큼 공급 우선권을 기대하고 있다”고 발표해 파문이 일었다. 지난 4월에는 미국이 독일이 주문한 3M 마스크 20만장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일어 양국 간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팬데믹 하에서 치료제의 개발과 공급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가 전무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앤드루 힐 리버풀대학 교수는 “코로나19 치료제의 균등 공급에 대한 논의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며 “미국이 렘데시비르를 독점해도 국제법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치료제 독점 정책을 유지한다면 영국 등 국가들은 강제실시권을 발동해 카피약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