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경 서울시향 대표 “무대 거리두기는 최선의 선택”

입력 2020-07-01 15:45 수정 2020-07-02 11:32
강은경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 강 대표는 “관객과 시민, 직·단원들과 노동조합, 서울시 등 수많은 색깔의 이야기를 동시통역하는 조율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영희 기자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은 한국 클래식계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다. 그래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에서 서울시향이 지난 5월 말 ‘새로운 일상(뉴 노멀)’을 표방하며 무대 위 거리 두기를 도입한 것은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무대 위 거리두기는 공연장에서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관객 간 거리를 두는 것처럼 연주자들 사이에도 거리를 두는 것이다.

“공공예술단체 경영자로서 제1의 원칙은 (서울시향) 가족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연주할 때 더 좋은 기량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서울시향 사무실에서 만난 강은경 대표는 “해외 사례들을 참고해 ‘뉴 노멀’의 초안을 만들었고, 의료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서울시향은 지난 5월 29일 국내 오케스트라 최초로 무대 위 거리 두기를 적용한 무관중 온라인 공연을 선보였다. 해외 오케스트라들 가운데 가장 엄격한 독일식 모델을 따른 것으로 연주자 간 1.5m 거리 두기를 기본으로 한다. 관악 및 성악 연주자는 더 넓게 띄어 앉는다.

하지만 국내 클래식계에 영향력이 큰 서울시향의 뉴 노멀 표방에 대해 공연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180억원에 달하는 서울시 지원을 받는 서울시향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열악한 민간 기획사 및 지역 교향악단은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독일 오케스트라 협회의 권고 기준이 해외 사례 중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었다”며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님과 50명 내외로도 높은 음악의 질을 구현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보다 코로나19 상황이 매우 좋은 한국에서 굳이 지나치게 엄격한 독일식을 따르는 것이 맞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엇보다 서울시향의 조치가 대중에게 공연장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켰다는 지적이다. 강 대표는 “민간에서 적용 유예를 요청하는 것은 객석 거리두기로서 무대 위 거리두기와 구분돼야 하며, 무대 위 거리 두기가 공연 시장을 위축시킨다고 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지난 2018년 3월 취임한 강 대표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법률적 지식을 겸비한 문화예술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서울대 법대와 대학원, 미국 로스쿨,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를 마쳐 이론에도 해박한데다 금호문화재단과 대원문화재단에서 근무해 실무에도 밝다. 그가 취임했을 당시 서울시향은 박현정 전 사장과 직원들의 소송전이 이어지면서 혼란이 컸다. 그래서 그는 취임 직후 ‘예술적 요청과 공공적 요청을 조화한 지속가능한 오케스트라’를 슬로건으로 내걸면서 소통과 협치를 강조했다.

지난해 5월 핀란드 출신 거장 벤스케가 음악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서울시향은 음악적으로 점차 안정됐다. 하지만 노조와 관련해 여러 차례 이슈의 중심에 섰다. 최근에는 지난달 17일 서울시의회 정례회에서 2019년도 단체협약서를 놓고 시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부지휘자·상임작곡가 등의 채용시 노조 합의가 필요하다는 등의 신설 조항이 대표의 인사권·경영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서울시향이 지난 18~1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4개월 만에 대면 공연으로 선보인 ‘오스모 벤스케의 말러와 시벨리우스’ 공연의 한 장면. 서울시향이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연주자 간 거리를 두는 ‘무대 위 거리두기’를 적용한 모습이다. 서울시향 제공, 뉴시스


단원이 오케스트라 경영·인사 등에 참여하는 ‘단원 중심 모델’은 베를린필 등 유럽 교향악단에서 많이 보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단원들의 고용과 해고 기준 등이 한국과 너무 달라서 그대로 대입하기 어렵다. 되레 한국에선 임금·고용 등에 대한 노조의 카르텔화가 우려된다. 약 180억원에 달하는 서울시향 예산 가운데 131명 인건비로 140억여원이 소요되는 것을 두고 노조의 입김이 지나치게 커진 탓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강 대표는 “의견 수렴은 투명하게 하지만, 인사·경영과 관련한 최종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은 대표의 권한”이라며 “베를린필 등 글로벌 스탠다드 모델과 서울시의 노동정책 방향, 두 가지에 비추어 단원 중심의 모델을 방향성으로 잡고 있는 것이다. 이 모델이 시스템상의 문제를 초래한다거나 인사·경영권을 넘겨주는 것은 전혀 아니다”고 부인했다. 강 대표는 또 “자존심 강한 예술가들이 100명 넘게 모여있는 조직에서 한 목소리만 나오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라며 “조직 내 당사자들이 함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올해 안에 구축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향은 최근 SM엔터테인먼트와 업무협약을 맺고 다음달부터 SM 소속 가수 노래의 오케스트라 버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 속에 공연계의 화두가 된 온라인 공연 관련 베를린필의 ‘디지털 콘서트홀’을 모델로 삼겠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코로나19로 오프라인 공연과 병행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많다”며 “온라인에 특화된 디지털 콘서트홀은 공공성과 수익, 사회적 거리두기를 함께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