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개막을 앞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가 연이은 인종차별 역사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MLB 역사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이름을 기려온 초대 커미셔너가 인종차별을 한 전력이 새삼 재조명되면서다. 최근에는 텍사스 레인저스가 과거 인종학살을 한 ‘텍사스 레인저’를 기념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최근 미 사회에서 한창 뜨거운 인종차별 반대 움직임이 역사가 오래된 MLB 무대에도 영향을 주는 추세다.
AP통신은 배리 라킨, 마이크 슈미트, 테리 펜들턴 등 전 MLB 최우수선수상(MVP) 수상자들이 1905년부터 1922년까지 MLB 초대 커미셔너 직을 지낸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1866~1944)의 이름이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 MVP 트로피에 적혀져 있는 것이 문제가 있다 지적했다고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실제 MVP 트로피 바닥 하단에는 랜디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 기념 야구상(Kenesaw Mountain Landis Memorial Baseball Award)이라는 문구가 그의 얼굴 모습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둥글게 적혀있다.
랜디스는 미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공헌과 과오가 뚜렷이 엇갈리는 인물이다. 1919년 월드시리즈 승부조작 사건인 이른바 ‘블랙삭스 스캔들’ 당시 사건에 연루된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 8명을 가차 없이 제명하고 복귀를 허용 않는 무관용 정책을 펼쳐 대중의 신뢰를 샀다. 그러나 또한 흑인 선수들을 MLB와 마이너리그 무대에서 뛸 수 없게 하는 인종차별 정책을 유지시키는 등 잘못도 저질렀다. 이 같은 미 프로야구의 인종차별 정책은 ‘컬러 라인’이라고 불리며 랜디스의 사후 2년 뒤인 1946년까지 존속됐다.
내셔널리그 MVP 3회 수상자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전설적인 3루수 마이크 슈미트는 “야구의 역사에서 유색인종에게 문호를 닫아 인종차별을 조장했던 이를 꼽는다면 랜디스가 후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00년대 초 야구계에서는 그런 일이 정상 취급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당화할 수는 없다”면서 “랜디스의 이름을 MVP 트로피에서 없애는 일은 그 시대에 벌어진 일이 옳지 않다는 걸 밝히는 일이 될 것이다. 내가 받은 트로피부터 기꺼이 그의 이름을 없애겠다”고 말했다.
MLB 올스타 12회와 1995년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한 전 신시내티 레즈의 흑인 유격수 배리 라킨은 “그 이름이 왜 거기 있어야 하나”라면서 “흑인 선수들이 극복해야 했던 인종적 불의와 불평등을 MLB에 유지시킨 그 이름이 트로피에 있다는 사실이 항상 신경 쓰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나 오늘날에는 랜디스의 이름이 현판이나 상패에 올라서는 안 된다. 그의 이름을 트로피에서 벗겨낸다 해도 전혀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