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통화…김정은엔 자기자랑, 푸틴엔 아부, 여성엔 막말”

입력 2020-07-01 09:06 수정 2020-07-01 09:10
CNN방송, 트럼프의 외국 정상통화 내용 보도
“트럼프, 김정은엔 자신의 재력·천재성 자랑”
“트럼프, 푸틴 인정받기 위해 아부하듯 처신”
메르켈엔 “어리석다”…메이엔 “바보” 막말
외국 정상에 오바마·부시 “얼간이” “바보” 험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할 때는 아부하듯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테리사 메이 당시 영국 총리 등 동맹국의 여성 지도자들과 전화통화를 할 때는 “어리석다(stupid)” “바보(fool)” 등의 막말을 던졌다고 CNN방송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재국가의 ‘스트롱 맨’들에게는 굽신대면서 동맹국들, 특히 여성 지도자들 앞에서 분노를 폭발시켰다고 CNN방송은 주장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정상들과 나눈 전화통화와 관련해 6월까지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12명이 넘는 백악관·미국 정보기관 당국자들을 인터뷰했다고 전했다. CNN은 이들 당국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통화 내용을 직접 들었거나 통화 내용 기록을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CNN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에서 쓴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 정상들과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의 대통령 재선과 정적들에 대한 복수 등 개인적 이익을 국가 이익보다 앞세운 것으로 보였다고 주장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 준비 없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동맹국 지도자들에겐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으면서 대통령 자신이 미국의 안보를 위험에 노출시켰다고 CNN은 비판했다.

CNN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의 통화에서 버락 오바마와 조지 W 부시 등 전임 대통령들을 ‘얼간이들(imbeciles)’과 ‘약골들(weaklings)’이라고 부르며 험담을 퍼부었다고 보도했다.

이번 CNN의 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트럼프, 김정은엔 자신의 재력·천재성 ‘자화자찬’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등과의 통화에서는 자신의 재력과 천재성, 대통령으로서의 ‘위대한’ 업적 등을 끊임없이 자랑했다고 CNN은 주장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 등에게 전임 미국 대통령의 저능함(idiocy)에 대해서도 계속 얘기했다고 CNN은 전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통화한 사실이 확인된 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보도의 출처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나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 당시 김 위원장에게 이런 발언을 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9년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렸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개최됐던 미·러 정상회담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트럼프, ‘스트롱맨’ 푸틴에겐 아부하듯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대부분 혼자 말했으며 자주 상식에서 벗어난 얘기를 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푸틴 대통령에게 오바마를 비롯한 전임 대통령을 ‘얼간이들’과 ‘약골들’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이 그들보다 얼마나 똑똑하고 강한지에 대해 자화자찬했다.

CNN은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전 모스크바에서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개최했던 얘기를 떠들어댔다고 주장했다.

특히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인정을 얻기 위해 아부하듯 환심을 사려는 듯이 보였다고 비판했다.

한 당국자는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압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체스로 따지면 푸틴 대통령은 챔피언인 ‘그랜드 마스터’, 트럼프 대통령은 체커 게임의 임시 선수였다고 비유했다.

이 당국자는 “푸틴이 서구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동안 미국 대통령은 푸틴이 자신을 ‘터프가이’와 ‘비즈니스 맨’으로 존경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비난했다.

익명의 당국자들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할 때 지독했다고 CNN에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무런 준비 없이 이들 정상들과 전화통화를 했으며 러시아·터키가 다양한 방법으로 미국의 약점을 공략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미국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미군 철군 결정을 내린 것은 러시아와 터키에 이득을 줬던 결정”이라며 “시리아 철군은 아마도 가장 비통한 사례”라고 CNN에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19년 12월 4일 영국 런던 외곽 왓포드에서 열렸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창립 70주년 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메르켈·메이 등 동맹국 여성 지도자들에겐 막말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을 공격했으며 특히 여성 지도자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타깃이 된 여성 지도자는 메르켈 독일 총리와 메이 당시 영국 총리다. 익명의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메르켈과 메이를 “거의 가학적”으로 비난하고 폄하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화통에서 메르켈 총리에게 “어리석다”고 말했으며 “메르켈은 러시아의 호주머니 속에 있다”고 비난했다. 이후 독일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가 “매우 비정상적이고 공격적”이라고 판단해 통화 내용을 기밀로 유지하고, 내용을 볼 수 있는 당국자를 축소하는 특별 조치를 취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테리사 메이 당시 영국 총리를 향해선 브렉시트와 이민 문제 등에 대해 “바보”, “줏대가 없다”고 공격했다.

하지만 두 여성 지도자의 대응은 달랐다. 메르켈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욕적인 언사를 ‘마이동풍’처럼 태연하게 대했지만, 메이 당시 총리는 불안하고 당황해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019년 11월 13일 백악관에서 열렸던 미·터키 정상회담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가장 많이 통화한 지도자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CNN은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일주일에 최소 두 번 꼴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나눴다고 보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 안보라인을 제쳐놓고 트럼프와 직접 통화해 참모들이 크게 걱정했다는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또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할 타이밍을 기가 막혀 알고 있어 백악관 참모들은 워싱턴에 있는 터키 정보기관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일정과 행선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골프를 칠 때 전화를 걸어 골프가 지연되기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으로 이득을 본 지도자다.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로 많은 통화를 한 지도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은 기후변화나 이란핵합의 등 미국이 탈퇴한 협약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바꾸려 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의 계속된 요구에 짜증을 냈다고 CNN은 보도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