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이 만든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 통과되면서 홍콩에 보장된 일국양제와 고도의 자치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미국은 홍콩보안법에 따른 일국양제 파기를 이유로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키로 해 아시아 금융허브로서 홍콩의 지위도 벼랑 끝에 몰렸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30일 오전 회의를 열어 홍콩 보안법을 상무위원 162명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법안 표결은 오전 9시에 회의가 시작한 지 15분만에 끝날 정도로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홍콩 정부는 전인대 상무위가 통과시킨 홍콩보안법을 기본법 부칙에 즉시 삽입해 홍콩 주권 반환일인 7월 1일부터 시행할 전망이다.
홍콩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리즘, 외국 세력과 결탁 등을 금지·처벌하고, 홍콩에 이를 집행할 국가안보공서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홍콩보안법이 기존의 현지 법 체계를 무시하고, 시민권과 정치적 자유 약화에 사용될 것”이라고 홍콩 시민들의 우려를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반환 23년 만에 가장 급진적으로 (홍콩인들의) 삶을 변화시킬 발판을 마련했다”며 홍콩보안법 통과로 중국과 서방세계 간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미국은 홍콩보안법 처리가 확실시되자 홍콩에 부여했던 특별지위를 일부 폐지하는 보복 조치에 착수했다.
윌버 로스 미 상무부 장관은 29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수출 허가 예외 등 홍콩에 부여했던 특혜 규정이 중단됐다”며 특별대우를 없애는 추가 조치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로스 장관은 “중국 공산당이 홍콩보안법을 시행하면 홍콩의 자치권은 약화되고, 민감한 미국 기술이 중국 인민해방군이나 국가안전부로 넘어갈 위험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미국은 홍콩에 대한 군사 장비의 수출을 종료하고, 미국 국방 및 민·군 이중용도 기술에 대해 제한을 가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중국은 홍콩을 일국양제가 아닌 ‘한 국가 한 체제’로 대하고 있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상무부는 2018년 4억3270만 달러(약 5200억원) 규모의 홍콩 수출품에 특혜를 적용했으며 이들 대부분은 암호화 기술, 소프트웨어, 첨단기술 등 군과 경찰에서도 중요한 물품들이다.
미 국무부가 지난해 홍콩으로 수출을 승인한 국방 물자 및 서비스 규모는 240만 달러(28억7000만원)에 달한다. 이번 조치로 일부 반도체 기업 등 홍콩의 다국적 기업들은 타격이 우려된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홍콩이 미국의 대외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8년 기준 2.2%에 불과하고 이중 국방 및 첨단기술 품목은 그 일부여서 이번 조치가 중국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은 1992년 제정한 홍콩정책법을 통해 관세·투자·무역·비자 발급 등에서 홍콩에 특별지위를 보장해 왔다.
홍콩에 최혜국 대우로 가장 낮은 관세율 적용, 상호 무비자 입국 허용, 기업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투자협정, 미화와 홍콩달러 교환비율을 고정하는 페그제 등 덕분에 홍콩은 아시아 금융허브로 성장했다.
이번에 미국이 홍콩에 취한 수출 제한 조치는 특혜의 극히 일부에만 적용한 셈이다.
만약 홍콩 특별지위 박탈이 관세, 무역, 이민 등에 전면적으로 이뤄지면 홍콩이 입는 타격은 심각할 전망이다. NYT는 미국 정부가 금융 제재를 취하지 않아 중국과의 대화 여지는 남겨뒀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특별조치 박탈로 미국 등 외국 기업들이 빠져나가면 홍콩의 금융허브 지위는 더욱 흔들릴 수 있다.
현재 1300여개 미국 기업과 8만5000여명의 미국인이 홍콩에 있다. 중국식 통제에서 자유로운 홍콩을 중국 및 아시아 지역 진출의 교두보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서방 국가에선 홍콩 보안법이 국가분열이나 테러 행위 처벌 뿐아니라 경제분야까지 전방위 검열을 하는 무기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따라서 홍콩 보안법 시행에 따른 불확실성과 특별지위 상실로 홍콩 특유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이 제약을 받게되면 외국기업들의 이탈이 이어지고 홍콩의 금융허브 지위도 물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이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