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병’에 놀란 학부모… 감사자료 뒤져보고, 간식 못먹게 하고

입력 2020-06-30 17:07 수정 2020-06-30 21:23
경기 안산시 소재 A 유치원에서 지난 16일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식중독 증상 어린이가 지난 22일 기준 99명까지 늘어 보건당국이 역학조사에 나섰다. 일부 어린이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일명 햄버거병) 증상까지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경기도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한 용혈성요독증후군(일명 햄버거병) 원인 파악이 늦어지면서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이 부실한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사립유치원 감사결과를 찾아 검색하고, 유치원에서 간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등 자체적으로 해법 마련에 분주하다.

안산에서 6살 남자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우모(35)씨는 햄버거병 파동이 터지자 유치원 감사 결과 조회 사이트 ‘SAFE KIDS’에 접속했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감사에 지적된 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씨는 “사고가 난 유치원은 예전부터 꾸준히 지적을 받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아이 하나 키우는데 감사 보고서 자료까지 뒤져보려니 피곤하지만 피해 아동들이 신장 투석까지 받는다는 사실에 불안했다”고 말했다. 우씨는 주변 학부모들이 접속한 단체 메신저방에 사이트 주소를 공유하기도 했다.

학원에서 지급하는 간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학부모들도 생겼다. 서울의 한 음악학원에서 악기를 가르치는 이모(30·여)씨는 “지난주부터 ‘우리 아이는 집에서 간식을 먹게 하겠다’거나 ‘가방에 간식을 싸서 보낼테니 이걸 먹여달라’는 학부모들의 부탁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예민해진 것은 마찬가지다. 수도권의 한 유치원 교사는 이날 오전 설사 증세를 호소하는 원생 한 명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 교사는 3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설사 등 햄버거병 초기 증세를 보이는 원생은 등원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공지를 인근 유치원 여러 곳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유치원 조리원 커뮤니티 등에서도 “원생 50명 이하의 소규모 유치원에서는 조리사들이 일찍 퇴근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점검이 나오면 지적사항이 우수수 발견될 것”이라며 걱정하는 게시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햄버거병 증상이 집단으로 발병한 유치원에서는 지난 16일부터 30일까지 원장과 종사자를 포함해 117명이 설사와 복통 등 관련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이 중 14명이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데 4명은 신장 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경기 안산상록경찰서는 유치원 내 설치된 CCTV와 급식 관련 기록이 담긴 장부 등을 확보해 수사하고 있다. 안산시는 이날 보고 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해당 유치원에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