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빈민들을 위해 14년간 헌신적 봉사활동을 펼치다 영면에 들어간 윤윤대(54)씨의 삶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아프리카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고 이태석 신부를 떠올리게 하는 윤씨는 최근 화순전남대병원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캄보디아 시엠립 한인회장을 지낸 고 윤씨는 서울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충북 충주시에서 개인사업으로 나름대로 성공했다. 국제로타리3740지구 회장을 맡아 봉사활동과 처음 인연을 맺은 윤씨는 동네에서 소문난 효자였다.
홀어머니의 갑작스런 타계 이후 방황하던 윤씨는 지난 2006년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났다. 충주 국민생활체육 축구연합 사무국장 등으로 일하던 그는 국제로타리클럽의 캄보디아 국제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충주중원로타리클럽 3740지구 회장으로 이 단체를 이끌던 윤씨는 여행을 통해 가난한 캄보디아의 참상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캄보디아가 1950년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한국에 쌀을 원조해준 고마운 국가였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됐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들도 그의 눈에 밟혔다.
윤씨는 여러 사정으로 국내 사업을 정리하고 지난 2007년 앙코르와트 유적지로 유명한 시엠립에 정착했다. 이후 윤씨는 현지 고아원들을 방문해 에이즈로 투병중인 아동과 빈민들을 위해 청소·빨래·목욕 등의 봉사활동을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는 수호천사로 불렸다.
현지민 주거지에 텐트를 치고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한 윤씨는 캄보디아어를 배우고 대신 그들에게는 한국어를 가르쳐주면서 돈독한 우정을 쌓아갔다. 무료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고 씨엠립 한글학교 담임을 맡아 한글보급에 열정을 쏟았다.
2004년 11월 설립 이후 한동안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던 ‘시엠립 한인회’ 재건에도 힘을 쏟아 그가 사무국장을 맡은 이 단체는 수년 만에 1000여명에 달하는 시엠립 거주 한국인들의 구심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내 류시명(51)씨도 지난 2010년 한국에서 시엠립으로 이주해 현지에서 발 마사지숍을 운영했다. 그러면서 남편 윤씨의 봉사활동을 적극 도왔다.
윤씨는 한인회를 주축으로 매월 ‘소카 고아원’을 방문해 위문품을 전달하고 형편이 어려운 현지 주민들의 집수리, 먹거리·의류 지원, 자전거 지원 등에 앞장섰다.
그동안 윤씨의 주선으로 경북의사회·열린의사회·충북의사회 등이 캄보디아 의료봉사에 참여했다. 충북 옥천군 자원봉사센터도 자원봉사와 함께 앙코르대학 한글어학과에 각종 도서를 기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봉사활동에 전념하던 윤씨에게 시련이 닥쳤다. 끔찍한 대장암이라는 병마가 찾아온 것이다.
지난 2018년 10월 광주에서 결혼하는 캄보디아 여성을 돕기 위해 입국했던 윤씨는 갑작스런 혈변증세로 검진을 받은 결과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윤씨의 암은 이미 간으로까지 퍼진 상태였다.
지인의 권유로 화순전남대병원에 어쩔 수 없이 입원한 윤씨는 수개월간 항암치료와 함께 대장암·간암 수술을 받았다.
아내인 류씨도 남편을 살리기 위해 시엠립 발 마사지숍을 헐값에 처분하고 줄곧 병간호에 매달렸다.
암투병 중에도 윤씨는 봉사활동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수술 직후 장루주머니를 찬 채 시엠립으로 돌아가 국내 의료진을 지원하는 등 현지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캄보디아를 수차례 오가며 암치료를 병행하던 윤씨의 병세는 잠시 호전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였다.
윤씨의 병세는 금세 암 재발과 함께 악화됐다.
윤씨의 입원 소식에 캄보디아 국가대표 양궁코치가 직접 병문안을 오는 등 현지인들의 위로방문이 줄을 이었다.
불행하게도 암세포가 폐와 엉덩이뼈 부위로까지 퍼진 그는 지난해 10월 투병 중에 마지막 캄보디아행을 결심한다.
“암치료에 여생을 허비하기 보다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시엠립 봉사활동을 계속하겠다”는 그의 신념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윤씨는 호흡도 힘들고 걷기조차 힘겨운 상황이던 지난 5월 서둘러 귀국했지만 온전한 치료를 받기 힘들었다.
코로나19 감염 차단을 위해 자가격리와 음압병실 입원을 거친 후 최근 화순전남대병원 응급실에 뒤늦게 입원했지만 온몸에 퍼진 암세포 탓에 얼마 되지 않아 숨을 거뒀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오열 속에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던 순간까지 그는 “캄보디아 고아들과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을 끝까지 잘 돌봐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윤씨의 타계 소식을 들은 시엠립 교민들과 그의 도움을 받은 많은 캄보디아 사람들은 “캄보디아를 돕던 천사가 하늘로 올라갔다”며 슬픔에 빠졌다.
윤씨는 암 투병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 지난 3월 SNS에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빠른 회복을 소망합니다”라고 적었다.
말기암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봉사활동에 전념한 윤씨는 지난 4일 평소 친하게 지내던 광주 지인의 소개로 광주 영락공원에 안장됐다.
화순전남대병원 관계자는 “윤씨의 숭고한 봉사정신을 캄보디아·한국 양국이 간직하고 널리 알렸으면 한다”며 “그의 도움을 받았던 캄보디아의 가난한 이들에게 그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