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6·25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해 지난 2월 발행한 중·고교 교육 자료 ‘동아시아, 평화로 다시 읽다’가 편향 논란에 휩싸였다. 베트남 전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우리 정부가 경제적 실리를 최우선으로 베트남 파병을 결정했고,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단정짓는 듯한 기술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 책자가 ‘계기 교육 자료’라는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학생들에게 균형있는 시각을 전달한다는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역사관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이 책자의 ‘5장 한국사의 거울, 아직 끝나지 않은 기억의 전쟁, 베트남 전쟁’을 보면 “한국 정부의 베트남 전쟁 참전 명분은 ‘공산 세계로부터 자유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였지만 실제로는 여러 목적을 가진 정권의 돌파구였다”고 적혀 있다. 한국군이 자유진영 수호보다는 정권의 정치·경제적 목적에 이용됐다는 것이다. 교육청은 서울 시내 중·고교 728곳에 이 책자를 1부씩 배포해 수업에 참고하게 했다. 집필진은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와 고교 교사 5명이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개인 차원에서도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 파병 지원의 1순위였다고 설명한 점이다. 책자에는 “(군인들의 파병 지원 이유는) 한국 생활에 대한 불만,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 상관의 명령, 애국심 등이 있었는데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금전적인 이유, 즉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적혀 있다.
집필진은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의혹도 사실상 인정했다. 집필진은 “(한국군이) 부비트랩이 터지거나 공격을 받으면 인근 마을을 베트콩이 있는 마을로 간주했다”며 “언어가 통하지 않아 주민 모두를 베트콩으로 보고 무차별 사살을 저지르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기술했다.
그러면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의혹이 처음으로 제기됐던 ‘1968년 퐁니·퐁넛 사건’을 소개했다. 이 사건은 베트남 생존자와 유족 103명이 지난해 우리 정부에 진상규명과 공식 사과를 요구했던 것을 말한다. 우리 정부와 국방부는 한국군 사료를 근거로 들어 민간인 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필진은 학생들에게 전쟁 속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베트남전 참전자 단체는 책자가 편향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관계자는 30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대가로 급여의 80%가량을 조국으로 보내 경제발전에 이바지했다”며 “한국군에 작전통제권도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돈 벌러 간 ‘용병’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또 국내 군사법정 기록과 당시 현지 외신보도를 근거로 들며 민간인 학살 의혹에도 선을 그었다.
이 책자가 ‘계기 교육’ 자료로서 균형을 잃었다는 의견도 있다.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평화라는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베트남전을 사례로 든 건 이해한다. 다만 자유진영의 가치를 수호했다는 내용은 뒤로 하고 돈벌이만 강조하면 그 자체로 편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큰 틀에서 평화라는 가치를 강조하고자 계기 교육 책자를 만들었고 발행 과정에서도 수십번의 재검토가 있었다”며 “결국 전쟁터의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모두 피해자였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전하려고 했다”고 해명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