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병 투석 소아, 초기 회복돼도 ‘만성 콩팥병’ 우려

입력 2020-06-30 05:02 수정 2020-06-30 10:25

경기도 안산 유치원 집단 식중독 사태로 아이들 건강관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더구나 장마철은 고온다습해 각종 식중독균이 번성할 우려가 크다.

이번 식중독 사고는 장출혈성대장균 감염이 원인으로 추정되지만 감염 경로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장출혈성대장균 감염은 ‘햄버거병’으로 불리는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을 일으키고 콩팥을 망가뜨릴 수 있다.
실제 지금까지 원아와 가족 등 16명이 용혈성요독증후군 의심 증상을 보였고 4명은 신장 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투석을 받을 정도로 급성 콩팥 손상을 입은 어린이는 초기에 회복되더라도 일부가 다시 나빠져 만성 콩팥병이 될 수 있는 만큼 5~10년간 콩팥 건강을 추적관찰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하일수 교수는 30일 “용혈성요독증후군 환자 10명 가운데 3~4명은 초기에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진다. 또 이들의 4분의 1 정도는 만성 투석 환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급성 신장 손상을 심하게 앓은 어린이는 회복되더라도 수년간 소아신장 전문의 진료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회복 뒤에도 초기에는 한 달에 한번씩, 이후 1년에 한번씩 피검사를 통해 장기적으로 콩팥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아 투석실 소수, 갈곳 없어
또 다른 문제는 국내에 소아 신장투석(신대체요법)을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많지 않아 찾아다니다가 치료가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용혈성요독증후군 환자의 10%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현재 만성 콩팥병 등으로 신장 투석을 받는 환자는 전국적으로 약 10만명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소아는 100여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병원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소아 전문 투석실 마련에 인색하다. 전국에서 소아 투석실을 별도로 갖춘 곳은 서울대병원 뿐이다. 성인과 소아가 함께 받는 투석실을 운영하는 곳도 수도권에 6곳, 전국적으로는 10여곳에 불과하다.

하 교수는 “강원도와 전북 등에서 이번처럼 용혈성요독증후군으로 급성 신장 손상 어린이 환자가 발생하면 투석실이 있는 수도권 등으로 와야 한다”면서 “성인에 비해 치료가 어렵고 인력 및 고가 장비가 필요함에도 턱없이 낮은 소아 투석 수가(진료 서비스 대가)의 현실화 등 정책적 문제 해결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안산 유치원의 환아 일부도 서울아산병원 등으로 투석 치료를 받으러 온 것으로 알려졌다.

10세 미만 생선회, 육회 먹이지 말아야
물론 어린이 식중독 피해를 막기 위해선 예방이 중요하다. 장출혈성대장균 감염을 피하려면 10세 미만 어린이에게는 날 음식을 먹이지 않는 게 좋다. 특히 생선회와 육회 종류는 피하고 구워먹을 때에도 다진 고기는 속까지 완전히 익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대장균은 70도 이상 열에서 죽는다.

1982년 미국에서 덜 익힌 다진 고기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먹은 어린이에서 용혈성요독증후군이 집단 발생해 이후 ‘햄버거병’으로 알려졌다.
햄버거만 이 병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대장균에 오염된 칼, 도마로 조리한 음식도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주방 도구는 위생을 청결히 해야 한다.

야채나 과일은 반드시 흐르는 물에 씻어먹어야 한다. 2011년 독일에서 장출혈성대장균에 오염된 호로파 싹 채소가 원인이 되어 대규모 감염이 발생했다. 또 2012년 일본에서 배추 절임을 먹고 100여명의 환자가 발생해 7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끓이지 않거나 정수되지 않은 물, 약수 등 오염 가능성 있는 식수는 피해야 한다. 물은 끓여 마시는 게 상책이다. 성인보다는 소아에 있어서 세균 독소 수용체 숫자가 더 많기 때문에 같은 병균에 감염된다 하더라도 어린이의 증상이 더 심각하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구토, 복통과 함께 피 섞인 설사를 하면 용혈성요독증후군을 의심해야 한다.
하 교수는 “10세 미만 어린이가 있는 가정은 물론 유치원, 어린이집 단체 급식에서도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질균도 용혈성요독증후군 일으켜
여름 장마철에는 장출혈성대장균 외에도 여러 세균성 식중독이 창궐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온도와 습도가 높아 세균의 번식 속도가 빠르다. 이질균, 황색포도상구균, 살모넬라균, 장염비브리오균, 콜레라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정지원 교수는 “이질균은 장출혈성대장균처럼 소아나 노약자에서 용혈성요독증후군을 일으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질은 용변 등으로 오염된 물과 변질된 음식을 통해 감염되고 전염성이 강하다. 위산에도 잘 죽지 않아 손에 조금만 묻어 있거나 200개 정도의 균에 감염돼도 이질을 일으킬 수 있다. 구역질, 구토 같은 초기 증세에 이어 3~6주 내 하루 수차례 설사가 일어난다. 어린이의 경우 탈수 현상을 보여 혼수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다.

식중독 예방의 지름길은 음식의 선택·조리·보관 과정을 적절히 관리하는 것이다. 세균은 주로 섭씨 0~60도에서 번식한다. 음식 저장은 4도 이하에서, 가열은 60도 이상에서 해야 한다. 정 교수는 “예외적으로 황색포도상구균 등 몇몇 세균에 의한 독소는 내열성을 갖고 있어 60도 이상으로 가열해도 식중독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조리된 음식을 섭취하되 가능한 즉시 먹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철저한 개인위생도 중요하다. 외출하거나 더러운 것을 만지거나 화장실에 다녀온 뒤에는 손씻기가 필수다. 손에 상처 있는 사람은 음식을 조리해선 안 된다. 황색포도상구균에 오염돼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