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대학병원에서 식기세척용으로 개발된 소독제를 가습기살균제로 4년간 오용해온 것으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 조사결과 드러났다. ‘하이크로정’이라 불리는 이 소독제는 식기·식재료를 닦는 용도로 사용할 땐 인체에 무해하지만 반복적으로 흡입할 경우 폐질환을 유발할 수 있어 가습기살균제로 쓰여선 안 되는 제품이다. 사참위는 유치원과 요양병원, 산후조리원 등 다른 다중이용시설에도 하이크로정이 유통된 만큼 정확한 피해규모를 확인하기 위해 정부가 전수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참위는 29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07년 2월부터 2011년 6월까지 4년4개월 동안 국내 한 대학병원이 식재료·식기살균소독제를 가습기살균제로 사용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이크로정의 주요성분은 이염화이소시아눌산나트륨(NaDCC)으로 국립환경과학원의 동물실험 결과에서 흡입독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물질이다. 반복흡입할 경우 폐에서 독성변화가 관찰됐다. 가습기살균제로 쓰일 수 없는 물질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하이크로정을 유통한 의약품 도매업체는 ‘가습기내(물통·분무통) 세균과 실내공기, 살균, 소독 목적으로 개발된 제품’이라는 문구를 기재한 허위 제품설명서를 작성해 병원 측에 홍보했다. 최예용 사참위 부위원장은 “업체 측에서는 당시 NaDCC가 들어간 다른 가습기살균제품들이 잘 팔리니까 하이크로정을 가습기살균제 용도로 억지로 변경해서 대학병원에 납품해 굉장히 오랫동안 많은 대학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과 병원 관계자들이 노출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당시 NaDCC를 주요성분으로 하는 가습기살균제 제품은 ‘엔위드’와 ‘세균닥터’ 등이 유통되고 있었다. 지금까지 엔위드를 사용해 건강피해를 입었다고 환경부에 신고한 사람만 93명에 달한다. 이 중 엔위드 제품만 사용한 피해자 2명과 다른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함께 사용한 피해자 13명이 폐질환 또는 천식질환을 인정받은 상태다.
병원 측도 하이크로정을 가습기살균제로 쓸 수 없다는 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도매업체가 건넨 허위의 제품설명서를 그대로 받아들여 정식계약을 체결했고, 병원이 자체적으로 작성한 ‘감염관리지침서’에 하이크로정을 가습기살균제로 사용한다고 적시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병원이 구입한 하이크로정은 3만7400정(374박스)에 달한다. 사참위 관계자는 “업체의 잘못된 광고에 의해서 대학병원이 감염병관리지침에까지 명시해 가습기살균제로 사용한 굉장히 특수한 경우”라며 “대학병원에도 책임소재가 있겠고 더 큰 책임은 이를 공급한 업체, 전 과정을 관리감독하지 못한 정부에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아직 정확한 피해규모조차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처음으로 신고한 제보자는 사망했고, 하이크로정에 의해 피해를 입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해당 기간동안 병원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의 수도 파악되지 않았다.
여기에 하이크로정을 유통한 업체 관계자는 이 병원뿐만 아니라 산후조리원과 유치원, 요양병원 등에도 문제의 제품을 납품했다고 사참위 측에 진술했다. 다만 가습기살균제 용도가 아닌 식재료·식기 세척 용도로 납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참위 최성미 가습기살균제조사2과장은 “제품이 납품된 곳을 상대로 한 보건당국의 전수조사가 필요하고, 다른 병원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없었는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