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노동청에 신고했으나 일부 근로감독관의 업무회피와 소극적 대응으로 또 다른 피해를 보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28일 ‘근로감독관 갑질’에 시달리는 직장인들 사례를 공개했다.
직장인 A씨는 “휴가 가고 싶으면 영원히 쉬어라”는 말을 듣는 등 가족회사 갑질에 시달리다 퇴사한 뒤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으로부터 회사 측의 조사를 받지 않으면 사건이 종결된다는 답을 들었다. 수많은 카카오톡 증거자료와 녹취록, 녹취 자료까지 보냈음에도 근로감독관의 소극적인 대응은 여전했다. A씨는 “괴롭히는 사용자가 모두 가족인데 회사 측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며 답답해했다.
B씨는 따돌림과 업무배제를 당해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으나 근로감독관으로부터 “업무배제는 직접 조사하겠으나 따돌림은 회사 내부조사를 받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런데 황당하게 따돌림은 가해 당사자가 조사를 했다. 결국 ‘괴롭힘 아님’으로 조사가 종결됐다. B씨는 감독관에게 항의했으나 “회사가 조사하면 더 뭐라고 할 수 없다”는 답만 받았다.
근로기준법 76조의 3(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은 회사인 사용자에게 신고하게 돼 있고, 사용자 측은 이를 인지한 경우 지체없이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런데 갑질 행위를 한 당사자나 그 특수관계인이 조사 주체가 되면 이 과정이 쉽지 않다. 또 괴롭힘으로 퇴사할 경우에는 노동청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이 회사에 신고하라고 하거나 신고인 조사도 하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퇴사한 이에게 ‘퇴사했으니 조사할 필요가 없다’며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진정인이 녹취록을 주니 ‘그걸 꼭 들어야 하냐’고 답하거나, 회사 노무사를 만난 뒤 갑자기 돌변하기도 한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진정사건 처리현황에 따르면 종결 2739건 중 진정 취하는 1312건으로 절반에 가까운 47.9%나 된다. 근로감독관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직장 내 괴롭힘 방치법’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직장갑질119는 “퇴사 후 신고·가해자가 특수 관계인인 경우 등 근로감독관 직접조사 범위를 늘리고, 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장은 곧바로 근로감독을 벌이도록 해야 한다”며 “근로감독청 신설·근로감독청원제도 활성화 등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