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 참작해 감형” 땅땅! 판결문에도 등장한 코로나

입력 2020-06-28 16:17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실직하게 된 점을 참작했다.”

어린이 셔틀버스를 운전하는 A씨는 지난해 말 교차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길을 지나던 운행자를 차로 쳐 전치 3주 상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 혐의가 적용됐는데, 서울중앙지법은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판사는 피해정도 등 다른 참작 사유와 함께 피고인이 사고 이후 터진 코로나19 사태로 어린이 셔틀버스 운전기사 일자리를 잃게 됐다는 점을 양형에 반영했다.

A씨 사례처럼 법원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해 형을 깎아주는 판결이 종종 나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매출감소, 실직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피고인들이 늘어나면서 처벌이 지나치게 가혹하지는 않은지 법원이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3월 대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B씨는 손님에게 주류를 판매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대구지법 서부지원은 혐의를 인정하는 B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면서 형 집행을 1년간 유예해 줬다. 2018년 1월부터 500만원 미만 벌금형에도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는데, 피고인이 벌금을 납부할 능력이 없는 경우 등에 선고된다. 판사는 판결문 양형이유에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노래연습장을 사실상 운영하지 못해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을 참작했다”고 적었다. 실제 판결이 선고된 지난 4월은 대구지역에서 코로나19가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던 시기다.

지난 1월 주정차 단속을 피하고자 식당 앞 도로에 댄 손님 차량 번호판을 가려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C씨도 코로나19로 법원의 선처를 받았다. 서울북부지법은 “코로나19로 인한 수입 감소 등 피고인의 경제적 형편을 참작해 벌금액수를 감액한다”며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법원 관계자는 “판사가 형량을 따질 때는 피고인이 처한 경제적 상황 등 다양한 점을 참작할 수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의료진에 자원해 ‘개전(改悛)의 정’을 보여준 사례도 있었다. D씨는 지난해 12월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됐는데, 세 번째 음주운전으로 실형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D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6개월을 선고했다. D씨가 반성하며 대구의 한 병원에 코로나19 파견의료 인력으로 자원해 중환자실에서 간호업무에 일주일간 매진한 점을 감안한 것이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