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의 단어 하나를 두고 배우들끼리 몇 시간을 토의하는 연극이에요. 열심히 공부했는데 아직 인물의 근처도 못 갔을까 봐 두려운 마음이 있어요.”(신구) “많은 무대에 올랐지만, 톱니바퀴가 예리하게 맞물려 도는 듯한 느낌의 연극은 또 처음입니다.”(남명렬)
연기경력을 합쳐 100년에 달하는 두 베테랑 신구(84) 남명렬(61)이 지난 17일 서울 대학로에 마련된 인터뷰 자리에서 ‘벼리고 벼린 연극’이라고 치켜세운 이 작품은 ‘라스트 세션’. 다음 달 10일부터 서울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국내 초연하는 작품으로,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한 연극계를 되살릴 기대작으로 꼽힌다. 신구와 남명렬을 비롯해 대학로 간판 배우 이석준(48)과 브라운관 스타 이상윤(39)이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미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창작한 2인극 ‘라스트 세션’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신구·남명렬)와 ‘나니아 연대기’ 작가 C.S. 루이스(이석준·이상윤)의 만남을 그린다. 무신론자 프로이트와 기독교 변증가 루이스는 실제론 만난 적이 없다. 상상력을 빌어 만난 두 지성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신의 유무를 두고 도발적인 논쟁을 이어간다. 연극 ‘킬 미 나우’ ‘그라운디드’ 등으로 호평을 받은 오경택 연출가가 초연을 지휘했다.
이 연극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최근 로맨틱 코미디 일색의 대학로에서 찾기 어려웠던 묵직한 느낌의 작품이어서다. 배역과 실제 인물 사이의 싱크로율도 상당하다. “신앙생활을 한 적이 없었던” 신구와 “모태신앙이었으나 현재는 종교가 없는” 남명렬이 프로이트로서 극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루이스 역의 이석준과 이상윤은 반대로 신실한 기독교인이다. 이석준은 독일의 동명영화를 리메이크한 수도사의 삶을 다룬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2016)를 연출·제작하기도 했다.
남명렬은 “최근 가벼운 것으로 일관된 사회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는 분들이 충족감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연극”이라면서 “신념과 배역이 다르면 ‘가짜’ 연기가 되기 쉬운데 이번 공연은 불꽃이 튈 것 같다”고 자신했다.
실제 이날 인터뷰 자리에서 4명의 배우는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철학을 두고 열띤 갑론을박을 펼쳤다. 프로이트 역의 배우들이 “루이스 말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힘들다”고 던지면 루이스 측이 “신을 증명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받아치는 식이었다. “말로 하는 펜싱경기”라는 배우들의 설명처럼 이 극에서 연기자들은 퇴장 없이 2시간 내내 ‘말맛’ 넘치는 대사들을 주고받을 예정이다.
그렇다고 ‘라스트 세션’이 뭔지 모를 암호문만 나열되는, 난해한 극은 아니다. 2010년 뉴욕 초연 후 인기에 힘입어 오프브로드웨이에서 2년간 775회나 공연이 됐고, 2011년 오프브로드웨이 얼라이언스 최우수신작연극상을 거머쥐었을 정도로 대중성 또한 상당하다. 신구는 “대사들을 보면 촌철살인이다 싶을 정도로 재치 있는 문장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석준은 “치열하게 토론하다가도 비행기 포격이 떨어지면 납작 엎드려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최근 작은 바이러스(코로나19) 하나에 문화예술계를 포함한 사회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이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라스트 세션’은 브라운관에서 활약해온 이상윤의 첫 무대 데뷔전이기도 하다. 화제의 SBS 드라마 ‘VIP’로 부상한 이상윤은 지난해 자선공연 ‘올모스트 메인’을 잇는 첫 정식 무대로 이 연극을 택했다. 그는 “신구 선생님의 작품 선구안을 믿고 출연을 결심했는데, 연습하면서 보는 모든 게 그동안 연기 생활에서 배운 것 이상”이라며 “선생님(신구·남명렬)과 형(이석준)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고 겸손을 보였다. 이석준은 이상윤에게 “한동안 대학로에 살았던 사람처럼 습득력이 빠르다. 젊은 친구와 작업하면서 이런 재미를 느껴본 건 오랜만”이라고 화답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