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유덕은 뮤지컬 ‘루드윅:베토벤 더 피아노’ 개막을 앞두고 베토벤을 재현하려 머리를 기르고 있다. 세종대왕, 모차르트 등 역사적 인물을 연기할 때마다 그가 하는 다짐이 있다. ‘그들의 명예에 먹칠하지 말자. 관객이 지니고 있을 위인의 이미지를 해치지 말자’. 외모까지 베토벤과 흡사해진 그의 다음 말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러려면 그들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 봐야 하고 저만의 캐릭터로 재해석해 완벽히 흡수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해요. 지난 몇 달을 ‘베토벤’으로 살았어요. 이제 무대에서 ‘박유덕의 베토벤’을 보여드릴 날만 남았어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뮤지컬 ‘루드윅’ 개막을 앞두고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박유덕은 베토벤의 찬란하고도 고달팠던 삶에 꽤 근접해 있었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떠나보낸 완벽한 고독의 날들을 보냈다. 천재 음악가의 생은 순탄치 않았지만 베토벤을 통해 누군가는 꿈을 꿨고, 그 꿈은 베토벤에게 열정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열정은 곧 집착이 됐다. 그 탓에 베토벤에게 파멸이 다가왔다.
베토벤의 집착은 자부심에서 시작됐고 조카 카를과의 관계에서 묻어난다. ‘루드윅’의 큰 줄거리는 군인을 꿈꾸는 조카 카를과 그를 자신의 뒤를 이을 음악가로 키우려는 루드윅의 갈등이다. “베토벤은 모차르트를 동경하면서 질투했지만, 누군가는 베토벤을 보며 열등감을 느꼈어요. 베토벤의 성공은 또 다른 이에게는 실패일 수 있죠. 동시대를 살았던 음악가들은 귀가 들리지 않는 베토벤보다 열등하다는 시기심에 휩싸였고, 이런 우상화는 베토벤에게 압박으로 다가왔을 것 같아요.”
압박은 집착으로 변질했고, 사랑으로 둔갑해 베토벤의 조카인 카를을 향했다. 카를이 “나는 싫어요, 나는 음악 안 할 거예요”라고 외치면 베토벤은 이렇게 말한다. “넌 내 음악을 이을 또 다른 베토벤이다”. 박유덕은 유독 이 대사가 가슴 아팠다. 베토벤의 집착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면서 그의 집착은 카를이 그토록 끊어낼 수 없는 족쇄인 것만 같았다. 박유덕은 “이 대사 한 문장으로 베토벤의 집착이 표현됐다”며 “자신감도 보이고, 자기애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애정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조카를 압박하는 장면에서 가슴이 시리더라고요. 베토벤도 그 상황에서 마음이 아팠기 때문에 제게 전달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조카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이 대사를 제대로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압박이고 집착이면서 한편으로는 사랑도 담겨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어요.”
그는 ‘박유덕의 루드윅’은 유연하길 바란다. 베토벤을 입체적인 캐릭터로 표현하면서 음악적으로는 천재성을 돋보이게 하고 인간적으로는 고독과 아픔 그리고 집착에 몰두할 생각이다. “가창력도 중요하지만, 연기력을 굉장히 요구하는 캐릭터예요. 자극적이지만 편안하게, 어렵지만 쉽게, 느슨하면서 긴장감 있게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베토벤이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지금까지의 과오를 인정한다는 거잖아요. 쓸쓸한 장면이죠. 하지만 그 안에 행복함도 있을 것 같았어요. 상황에 몰입해 연기를 해보니 외롭긴 한데,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공연이 수시로 중단되는 상황에서 공연을 올리기까지 박유덕도 내심 불안했다. 그는 “대중과 함께하는 공연이 지금처럼 감사할 때는 없었다”며 “이번 공연이 관객 모두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모든 걸 내려놓고 행복하게 울 수 있는 공연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