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람이라고 꼭 롯데 게임 봐야하는 건 아니죠.”
포털 기사 댓글은 여론을 온전히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 폭우로 25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더블헤더 경기가 취소된 뒤, 이틀 간 부산 시내 곳곳에서 롯데 팬들과 대화를 나눠본 건 오프라인 여론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단 몇 명의 의견이 대표성을 갖진 않겠지만, 적어도 ‘인기구단’ 롯데를 향한 팬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확인할 수 있었다. 팬심은 떠나고 있고, 이를 돌려놓기 위해선 프런트와 현장의 단결된 모습이 필요하단 점이었다.
팬심과 유리된 인기구단
26일 김해국제공항에서 만난 회사원 이모(56)씨는 부산고 시절이던 40년 전 롯데를 응원하기 시작했지만 4~5년 전부턴 두산 베어스나 LG 트윈스, NC 다이노스의 경기만 본다고 했다. 평소 아마추어 야구를 즐기기도 한다는 그는 “롯데 야구의 고질적인 병폐는 프런트가 현장을 너무 흔든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씨는 “주형광 코치가 있을 때도, 양상문 감독이 있을 때도 처음엔 자율적인 야구를 맡긴다고, 죽이되든 밥이되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만 성적이 조금만 좋지 않아도 프런트가 지켜봐주지 않고 개입했다”며 “허문회 감독에게도 같은 방식이 되풀이되니 감독과 선수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4~5년 전 약 350만원짜리 지정석을 구매하고도 경기를 10번도 보러가지 않았던 이유로 ‘프런트의 기에 눌린 선수들의 모습’을 꼽았다. 지더라도 끈기 있게 물고 늘어지는 경기가 나온다면 팬들은 재미를 느끼는데, 그런 모습이 없었단 소리다.
이는 비단 이씨만의 의견은 아니었다. 25일 부산 진구에서 만난 바텐더 A씨(32)는 롯데를 응원하다 약 2년 전부턴 키움 히어로즈의 팬이 됐다고 했다. 그는 “이정후나 김하성 같은 젊은 선수들을 응원할 맛이 나 키움 팬이 됐다”며 “롯데 야구는 재미가 없다. 이제 잘 안 봐 최근에 어떤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사직야구장 근처에서 만난, 프로야구 초기부터 야구를 봤다는 택시기사 B씨(72)도 “롯데는 매년 우승할 생각이 없고 구단을 마케팅 차원에서만 활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 동래구 주민 C씨(45)는 “사직야구장 주변 단지 주민들이 과거엔 팬들이 너무 몰려 시끄럽다고 울상이었는데 요샌(무관중 이전) (관중이 적어져) 그런 불만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롯데를 흔드는 건 언론인가
그런 롯데가 최근엔 구단 내부 주체들 간 갈등이 있단 일련의 논란에 휩싸였다. 이를 두고 ‘언론이 롯데를 흔든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롯데를 흔드는 게 언론인 건지, 롯데 내부의 각 주체가 언론을 이용하거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갈등을 표면화시키는 건지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을 사실상 인정하는 듯했던 이석환 대표이사의 언론 인터뷰는 롯데 측이 언론에 인터뷰를 공식적으로 요청해 성사된 자리란 게 밝혀졌다. 이 대표이사는 대중에 완전히 공개될 수 있는 인터뷰 자리에서 최근 원정 9연전 중 17~19일 3연속 끝내기 패배를 당한 게 아쉬웠고, 경기를 져놓고 웃는 모습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고, 승률 5할 미만으로 떨어진다면 현장과 프런트 모두가 긴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전했다.
롯데는 지난 시즌 48승93패3무(승률 0.340)로 10개 팀 중 10위였다. 2018년에도 68승74패2무(승률 0.479)로 10개 팀 중 7위였다. 초보 감독인 허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올 시즌 성적은 21승21패(승률 0.500)로 6위로, 직전 두 시즌보다 확연히 나아졌다. 어떤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는 구단 수장의 자유겠지만, 그는 어찌됐든 내부적인 갈등 상황이나 불만 사항을 언론을 이용해 외부적으로 드러내는 길을 택했다.
현장을 책임지는 허 감독으로선 이런 메시지가 불편했을 수 있다. 결국 사과를 한 뒤 변화된 자세를 보였지만, 지난 23일 KIA전을 앞두고 열린 사전 인터뷰에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논란이 되길 자청했다. 그 뒤에 감춰진 구단 내부 상황이 어떻든 간에, 외부로 ‘공개 된다’는 사실이 명확한 언론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불편한 심기를 내색하며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해도 대답하지 않은 건 허 감독이다. 그리고 언론은 이 대표이사와 허 감독의 인터뷰를 기사에 담아 대중에 공개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프런트가 구상한 구단 방향이 결과적으로 좋은 방향이 될 수도 있고, 감독의 선수단 운영 철학이 최종 성적에 더 큰 기여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양쪽이 갈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갈등이 양 측의 자유의지로 외부에 적나라하게 공개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갈등이 내부적인 대화를 통해 해소되고, 적절한 타협안이 도출돼 한 방향으로 합심해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프로 무대에서 원하는 성적을 낼 수 있을진 미지수다. 분명한 건 유리된 팬심은 재미있는 야구로 기대만큼의 성적을 잡아야 돌아온단 사실이다.
26일 포수 지성준(26)의 사생활 논란이 불거져 구단이 중징계를 내렸을 정도로, 현재 롯데의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승률 5할을 갓 달성한 롯데가 일치 단합된 모습으로 성적을 끌어올려 떠나간 팬심을 되돌릴지 주목되는 시즌 초반이다.
부산=글·사진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