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분 나쁜 건 ‘4부 리그 LCK’라는 조소였다”

입력 2020-06-26 17:10 수정 2020-06-27 01:02
-LCK 프랜차이즈, 이정훈 라이엇 게임즈 한국 오피스 리그운영팀장 일문일답

이정훈 라이엇 게임즈 한국 오피스 리그운영팀장. 라이엇 게임즈 제공

올해 국내 e스포츠 업계의 최대 화두는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프랜차이즈화다. 라이엇 게임즈는 지난 4월 LCK 프랜차이즈 계획을 발표했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이끌고 있는 이정훈 리그운영팀장은 이미 복수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청사진을 밝혔다. 이번 기사에서는 그동안 다뤄지지 않은 흥미로운 주제들을 중심으로 일문일답을 짰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프랜차이즈화를 준비하고 있나.
“프랜차이즈화를 준비한 건 재작년부터였다. 그간 가장 기분이 나빴던 건 ‘라이엇 게임즈가 대회 운영을 못 한다’는 말이 아닌 ‘LCK는 이제 4부 리그다’라는 조소였다. 우리 한국 오피스로서는 크게 자존심이 상했다. 팬들이 자조적인 생각을 하지 않게끔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한국 e스포츠 시장에서 이번 프랜차이즈화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스포츠가 해당 게임의 마케팅 수단을 넘어서 독립적인 스포츠가 될 수 있다는 걸 입증하는 일이다. 비단 라이엇 게임즈와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만 한정 지을 게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e스포츠가 스포츠 산업으로 인정받는 데 일조하겠다는 사명을 갖고 일하겠다.”

-프랜차이즈 가입비가 고액인 만큼 준비 기간이 짧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팀들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준비 기간이 길었다면 그런 어려움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은 있다. 프랜차이즈는 심사 과정을 거친다. 팀의 프랜차이즈 선정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투자자들이 들어오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투자자는 ‘팀의 프랜차이즈 선정이 확실하면 투자하겠다’고 하고, 팀은 ‘투자자가 먼저 들어와야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짧은 준비 기간에 대해 아쉬움은 있겠지만, 투자의 불확실성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여러 애로 사항이 있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에 작년부터 ‘2020년에 프랜차이즈화 추진 가능성이 크다’고 팀들에 어느 정도 언질을 줬다. 우리가 봤을 때는 이미 많은 팀이 예전부터 프랜차이즈 가입을 준비해왔다.”

-프랜차이즈 심사 통과 후 노골적으로 투자를 줄이는 팀이 나올 수도 있다.
“특정 팀이 계속 하위권에만 맴도는 걸 방지할 장치를 마련하려고 한다. 리그 퇴출 심사 대상에 오르게 할지, 혹은 바로 퇴출할지 그런 건 아직 고민 중이다. ‘하위권에 머무는 마지노선이 5년이냐, 7년이냐’같은 구체적인 사항은 팀들과 계약하는 과정에서 결정하겠지만, 그런 장치는 분명하게 만들 계획이다.”

-프랜차이즈 심사 결과를 발표하는 시기(9월 말)가 애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진출 팀이 심사에서 탈락할 경우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도 고심한 문제다. 롤드컵 전에 발표하면 방금 말한 것처럼 일부 선수들의 동기부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과장해서 얘기하면 롤드컵에서 우승했는데 이미 팀은 심사에서 탈락했을 수도 있고. 반면 롤드컵 후에 심사 결과를 발표하면 일부 팀이 스토브리그를 준비하는데 굉장히 불리할 수 있다.
결국 프랜차이즈 심사를 통과한 팀들을 위해서는 롤드컵 개막 전에 발표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선수들의 계약종료 시점이라든지, 리그 출범 일자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장기 계약으로 묶인 선수의 소속팀이 프랜차이즈 심사에서 탈락할 경우에는.
“심사 탈락팀과 일부 챌린저스 팀 소속 선수들을 어떻게 LCK로 흡수할 수 있을지 그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항간에 알려진 드래프트 제도는 우리가 고려 중인 방법 중 하나다.. 세부적인 부분을 더 고민하고 확정 지으려 한다.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 선수들을 LCK 1·2군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 중이라는 점이다.”

-프랜차이즈화 후에는 팀들의 유망주 육성 제도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아직은 가안 단계지만 준 아마추어 대회를 도입할 예정이다. 예를 들면 야구에는 청룡기 같은 대회가 있지 않나. 우리는 학원 스포츠가 없다 보니 그런 대회도 없다. 유망주를 육성하기 위한 대회를 마련하려 한다.
이 대회는 출전 선수 연령 제한을 조금 낮추는 것도 고려 중이다. 아카데미 팀 선수들도 참가할 수 있다. 즉 우리는 LCK 1군 리그와 2군 리그, 그리고 준 아마추어 리그를 동시 진행하려 한다. 또한 선수 DB(데이터베이스)의 구체화도 목표로 두고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e스포츠에 대한 사명감을 프랜차이즈 심사 기준 중 하나로 꼽고 있다. 프랜차이즈화를 추진하는 우리에게 이 사명감이 없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라이엇 게임즈 한국 오피스 e스포츠팀 전부가 그런 의지를 갖고 프랜차이즈화에 도전하고 있다.
이제 ‘3부 리그, 4부 리그’같은 얘기 듣기 싫다. 전 세계적으로 e스포츠 시장이 발전하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 않나. LCK가 글로벌 e스포츠 시장을 선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원래 그래왔기도 했고.
국제 대회를 치르면 라이엇 게임즈의 각 지역 오피스 직원들이 한곳에 모인다. 우리는 리그를 주최하고 운영하는 입장이므로 특정 팀을 응원하는 건 지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 대회를 진행하면 각 지역 오피스 직원들 간에 긴장감이 어마어마하다.
작년 국제 대회에서 대만·홍콩·마카오 지역 리그인 ‘LoL 마스터즈 리그(LMS)’ 팀이 잘하다가 대회에서 탈락했다. 해당 지역 오피스 직원이 복도에 주저앉아 울고 있더라. 사실 작년까진 그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중국 오피스 직원들 만나면 피해 다닌다. 말도 섞기 싫다. 하하. 그럴 때마다 LCK가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기 위해선 프랜차이즈 제도가 성공적으로 도입돼야 한다. LCK가 한 단계 도약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윤민섭 이다니엘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