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좀 구해주세요. 딸이 납치당했어요.”
지난 21일 오전 10시 53분쯤 전북지방경찰청 112상황실에 한 중년 남성의 다급한 신고가 걸려왔다.
“방 안에 갇혀 있는데 어디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경찰은 강력범죄 현행범을 잡아야 할 때 내리는 ‘코드 제로(0)’를 발령하고 아버지와 통화한 딸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했다. 경찰은 순찰차 7대와 강력팀, 타격대 등을 동원해 발신지로 확인된 아파트 주변을 에워쌌다.
그러나 1000가구가 넘는 아파트내 어느 집에 딸이 갇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때 112상황실의 한 여성 경찰이 기지를 발휘했다. 개인 휴대전화로 친구인 척 딸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을 다독이고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먼저 “나를 친구처럼 대하라. 옆에 누가 있으면 아무 버튼이나 누르라”고 했다.
신호음이 없자, 조심스럽게 상황을 물어 가해 남성은 다른 방에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하지만 집의 동이나 호수 등은 알아내지 못했다.
여경은 겁에 질린 딸에게 다시한번 용기를 북돋웠다.
“친구야. 베란다로 얼굴 한 번만 보여줄래? 아니면 휴지나 옷 같은 걸 걸쳐놔도 좋아.”
겁에 질려 있던 딸은 고민 끝에 난간에 이불을 걸고 베란다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여경은 “밖에 뭐가 보여? 보이는 걸 다 말해봐”라고 물었다. 딸은 “편의점이랑 헤어샵이 보인다”고 답했다.
여경의 요구에 고개를 찬찬히 돌리던 딸은 아파트 단지에 서 있는 중년 남성을 발견하고 “아빠…아빠…”하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층수와 호수를 확인한 경찰은 현관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딸을 무사히 구출했다. 신고 전화가 걸려온 지 1시간 만이었다.
집 안에 있던 A씨(39)는 지인을 감금하고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 등으로 현행범 체포했다. 그는 함께 있던 여성이 술에 취하자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북경찰청 관계자는 “아파트 전체를 하나씩 수색하다가는 피해자가 위험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 여성이 많이 불안해하는 것 같아서 친구처럼 대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며 “무엇보다 무사히 구출돼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