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북, 남측 물밑제안 기대할 것…워킹그룹 족쇄 풀어야”

입력 2020-06-25 11:24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25일 “남쪽이 비방 전단 살포 등과 관련해서 적극적으로 진정성 있게 나오면 (북한이) 다른 모든 것을 재조정해서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쪽으로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한 것과 관련해 이같이 진단한 것이다.

정 수석부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 40여명을 대상으로 ‘위기의 한반도 어디로 갈 것인가. 북핵 문제 발생 원인과 해법’이란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전날)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남측이 뭘 하는지 봐가면서 자기들도 입장을 정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남측에서 물밑으로라도 제안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겠느냐”며 “한국 정부가 한·미 워킹그룹 족쇄를 풀고 나오든 해서 (북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또 김영철 부위원장이 전날 대남 담화를 낸 데 대해서도 “대남·대미 사업에 관여하다 하노이 회담 이후 물러나 있던 김 부위원장이 이렇게 (등장해) 말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소위 대남정책 지원이라고 생각한다”며 “한 20일 동안 큰일났다고 전전긍긍했는데 김 위원장이 20일 만에 나타나 이것도 20일 만에 풀릴 것 같다”고 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1시간여 동안의 강연에서 미국의 대북정책 역사를 주로 설명했다. 그는 “미국이 1990년대 초에 북한과 수교를 해줬으면 한반도 냉전 구조가 해체됐을 것이다. 이 정도까지 키워놓은 건 미국의 북핵정책이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라며 “협상으로 해보려다가 선(先) 핵 포기 후 경제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한 볼턴 같은 사람을 써 여기까지 왔다”고 비판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할 가능성이 낮고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새 정부가 들어섰을 때 바이든 전 부통령도 오바마 전 대통령 때 같은 전략적 대북정책이 아닌 클린턴 전 대통령 때의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판을 짜주면 좋겠는데 그런 일을 한국 정부가 해주면 나쁘지 않다”며 “그러려면 남북관계를 미리 복원해놓는 게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미 워킹그룹에 대해서는 “핵 문제와 관련해선 한·미 간 워킹그룹 틀 밖에서 워킹그룹의 족쇄를 풀고, 핵 문제를 풀기 위해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문재인정부는 임기 중에 성과를 내는 데에만 집착하지 말고 다음 정부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하기 쉽도록 터전을 닦아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뒤늦게 생긴 한·미 워킹그룹은 한·미 공동선언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느냐, 아니면 그 반대냐는 문제적 고민이 있다”며 “미국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느냐”고 질의했다. 이에 정 수석부의장은 “대통령 주변에 한 발짝 앞서가는 얘기를 하는 참모들이 있으면 미국을 우리가 끌고 갈 수 있다”며 “참모를 잘 둬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북한을 상대할 때는 문장 속 숨은 행간을 읽어야 하는데 미국이 그걸 못한다. 그런 논리로 미국을 설득하면서 끌고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수석부의장은 회고록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판했다. 그는 “실제로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볼턴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짐작컨대, 부시가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정한 것도 볼턴 작품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은 “볼턴 회고록은 자기가 자랑한다고 써놓은 건데, 자기가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자백서 같다”며 “볼턴을 보면서 한반도 운명을 너희들이 이렇게 허술하게 좌우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