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가 그린 그림을 자신이 그린 것처럼 속여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씨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5일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검사는 이 사건을 사기죄로 기소하였을 뿐 저작권법위반으로 기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공소사실에서 누가 이 사건 미술작품의 저작자라는 것인지 표시하지 않았다”며 “저작물·저작자에 관한 검찰의 상고이유 주장이 불고불리 원칙에 반한다”고 했다. 불고불리의 원칙은 검사의 공소제기가 없는 사건에 대해서는 법원이 심판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 절차의 원칙이다.
재판부는 또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그 미술작품에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 등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미술 작품이 위작 저작권 시비에 휘말리지 않은 이상 기망이라 볼 수 없다”고 했다.
조씨는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까지 무명화가 송모씨가 그린 작품에 가벼운 덧칠을 한 뒤 자신의 그림이라고 속여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송씨에게 1점에 10만원씩을 주는 조건으로 자신의 기존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오게 하거나 추상적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그림을 그리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조씨에게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
이른바 ‘그림 대작’ 사건은 재판 단계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작 미술품과 관련된 명확한 판례가 없는데다 대작의 허용 범위 또한 작품 종류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는 미술계에서 제3자를 사용한 제작 방식이 허용되는지, 미술 작품을 제작할 때 2명 이상 관여한 경우 구매자에게 사전에 알려야 하는지 등이 쟁점이 됐다.
1심 재판부는 조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부분의 작업을 다른 작가가 완성하고 마무리에만 일부 관여한 작품을 온전히 자신의 창작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조수 송씨는 조씨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보조자에 불과하고 미술작품의 작가가 아니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은 검찰이 상고하면서 대법원으로 이어졌다. 대법원은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개변론을 열었다. 검찰 측은 “회화는 누가 그리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탄생하기 때문에 직접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조씨 측 변호인은 “조씨가 콘셉을 구상하고 지시했으므로 작품은 그의 단독 저작물”이라고 주장했다.
조씨는 공개변론에서 “남은 인생을 갈고 다듬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참된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살펴주시길 청한다”며 “부디 제 결백을 알려 달라”고 했다. 대법원은 조씨의 손을 들어줬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