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군 총참모부의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하기로 전격 결정하며 벼랑 끝으로 치닫던 남북 관계에 일단 제동을 걸었다.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으로 대표되는 강경 일변도의 대남 공세로 소기의 목적을 얻었다는 판단에 따라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우리 정부에 충격요법을 줬고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강력제한 방침을 이끌어낸 만큼 속도조절에 나서겠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23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예비회의를 화상으로 지도하고 북한군 총참모부가 제기한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했다고 노동신문이 24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별도 예비회의를 연 것은 처음이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지난 17일 노동당 중앙군사위 비준을 통해 이른 시일 내에 금강산 관광지구·개성공단에 군을 재투입하고, 접경지역 부근에서 군사훈련을 재개하는 등 군사행동에 나서겠다고 공언해왔다.
남북 관계 악화에도 17일간 침묵을 지켜온 김 위원장이 돌연 대남 군사행동 보류 메시지를 던진 것은 이제는 우리 정부의 남북협력 등 후속조치를 봐가면서 유화 제스처와 강경도발 등 선택에 나서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대남 행동 보류 지시를 내리면서 “최근 조성된 정세를 평가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북한이 이달 초부터 대남 맹비난과 문 대통령 조롱, 공동연락사무소 폭파까지 잇따라 안보위기를 끌어올리는 방식을 사용해 우리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차단 약속을 받아냈다. 또 대내매체 등을 통해 연일 대남 적개심을 부추기면서 최악의 경제난에 불만을 가진 주민들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기도 했다.
군사행동을 통한 대남 공세가 장기화할 경우 득보다 실이 많아 김 위원장이 급제동을 걸었다는 분석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 스스로 군사도발을 계속하면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를 반대할 명분이 사라진다”며 “최근 미군의 항공모함이 한반도 주변에 배치된 것도 군사행동을 보류하는 데 영향을 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미국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호와 니미츠호는 지난 21일부터 필리핀 해역에 배치돼 한반도를 작전지역 삼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도 “금강산 지역과 개성공단에 군을 다시 배치할 경우 발생할 경제적 손실도 감안한 것 같다”며 “부대 주둔에 필요한 시설들을 새로 조성하고 군인 및 무기들을 동원하는 데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긴장 국면을 계속 가져가는 게 안보는 물론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만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완전히 철폐한 게 아닌 만큼 북한 내부 사정과 향후 한반도 정세에 따라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 위원장이 중앙군사위 본회의가 아닌 예비회의를 통해 이를 결정했고, 취소가 아닌 보류 표현을 쓴 것이 그 근거라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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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