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피고인의 딸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24일 서울고법 형사1부의 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가 6살 난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최모씨를 피고인석에서 일으켜 세웠다. 갈색 수의 차림에 머리가 헝클어진 모습의 최씨는 고개를 숙인 채 정 부장판사의 선고 주문 낭독을 들었다.
정 부장판사는 “유엔총회가 1959년도에 채택한 아동권리선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며 최씨를 꾸짖기 시작했다. 그는 아동권리선언 도입부를 인용하며 “아동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태어나기 이전뿐만 아니라 태어난 이후에도 적절한 법적 보호를 포함해 특별한 보호와 관리를 받아야 하고, 인류에게는 아동에게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동인권선언 원칙 6항과 10항을 잇달아 인용해 “아동은 가능한 한 부모의 책임 하에 보호를 받으면서 사랑이 넘치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안정된 환경 속에서 성장해야 한다”며 “아동은 자신의 활동력과 재능을 자신의 동료를 돕는데 쏟아 부어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자각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부장판사는 최씨가 이 같은 부모의 책임을 저버렸다고 질책했다. 그는 “피해 아동은 특별한 보호를 받지도 못했고, 사랑이 넘치는 환경 속에서 성장할 기회도 허락받지 못했으며, 자라나서 자신의 활동력과 재능을 동료를 돕는데 쏟을 기회도 모두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지난해 5월 15일 인천 서구의 자택에서 딸을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딸의 생일 다음 날 벌어진 범행이었다. 최씨는 경찰에 자수했지만 “아이가 배변을 잘 못하고 이기적인 성격이라 자신이 계속 고통 받으며 살 것 같아 살해했다”며 범행 동기를 딸 탓으로 돌렸다.
최씨는 사건 당일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숨바꼭질 놀이를 하자고 해놓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전 ‘어떻게 하면 사람을 죽일 수 있나’ 같은 내용을 휴대전화로 검색한 사실도 드러났다.
최씨는 1심이 선고한 징역 25년은 무겁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에 와서는 사건 당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다며 감형을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최씨가 휴대전화로 범행 방법·장소와 CCTV 관련 사항을 미리 검색했고, 긴급체포됐을 때 경찰서 유치장에 함께 있던 사람에게 심신미약으로 나가는 방법을 물었다며 이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1심과 같이 징역 25년을 선고했고, 최씨는 한숨을 쉬면서 법정을 빠져나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