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좀비극, ‘부산행’ ‘킹덤’과는 다르다

입력 2020-06-24 16:20 수정 2020-06-24 16:24
연극 '예라고 하는 사람 아니오라고 하는 사람' 포스터. 문화발전소 깃듦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부터 영화 ‘부산행’ ‘#살아있다’ ‘반도’까지. 개봉 시기도 스토리도 제각각인 이들을 꿰뚫는 키워드는 ‘좀비’다. 한국적인 개성에 좀비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을 합친 이 ‘K좀비’들은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다. 24~28일 서울 대학로 소극장혜화당에서 선보이는 ‘예라고 하는 사람 아니오라고 하는 사람’ 역시 이 ‘K좀비’를 앞세운 극으로 눈길을 끈다.

극은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1932년 만든 동명 원작을 토대로 재창작됐다. 평화롭던 도시에 갑작스레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고등학생들과 교사, 군인들은 생존을 향한 사투를 펼친다. 극의 제목이 암시하듯 최근 사회 이슈로 떠오른 젠더 갈등이나 환경과 발전 등 여러 대립 속에서 ‘동의와 비동의의 문제’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무조건적인 동의는 옳은지, 동의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렇다면 아니라고 말하는 행위는 무엇인지 등을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통해 풀어낸다.

‘좀비’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대중문화 콘텐츠만이 아니라 연극에서도 ‘좀비’를 활용한 작품들은 종종 얼굴을 비추곤 했다. 가령 극단 고래의 ‘비명자들’은 사회에서 제거돼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존재이자, 고통에서 허우적대는 생명체를 표현하기 위해 좀비라는 은유를 활용했다. ‘좀비’를 액션 소재로 많이 활용하는 대중문화 콘텐츠와 달리 연극에서 ‘좀비’는 상징적 성격이 더 강해진다.

노심동 연출가는 24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대본 창작 과정에서 지금 시대의 전염병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좀비 바이러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좀비는 우리를 ‘동의와 비동의’에 직면하도록 하는 공포나 위기감, 무언가를 강요하는 권력이나 거대한 힘을 상징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기괴한 분장의 좀비가 등장하는 대신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배우들은 좀비 가면과 무용, 혈흔 등을 통해 ‘좀비가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즉시성·현장성을 근간으로 하는 무대 예술 특성상 분장을 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노 연출가는 “관객들이 무대에 근접한 거리에서 연극을 보기 때문에 분장이 오히려 구체적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좀비 분장으로 놀라는 것은 몇 초가 되지 않는다. 서늘한 느낌을 주기 위해 ‘존재가 있다’는 것을 오히려 더 강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예라고 하는 사람 아니오라고 하는 사람’은 연극배우로도 활동했던 노 연출가가 ‘문화발전소 깃듦’을 이끌며 선보이는 첫 작품이다. 몰입을 의도적으로 저지하는 브레히트 특유의 서사에 드라마성을 더해 몰입감을 높였다. 소규모 오페라 형식으로 쓰인 원작에서 음악극 요소를 빼는 대신 무용 등 퍼포먼스가 가미됐다. 무대에는 설창호 이현준 이지호 정수연 오혜민 등 베테랑들이 오른다.

극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게 됐다. 노 연출가는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재난 앞에 선, 개인과 전체의 관계를 고민해볼 수 있는 극이 될 것”이라며 “더 바람직한 동의와 거부는 무엇인지 이야기 나누는 극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