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불안 묻어두고 사는 접경지역 주민들… “걱정 없다면 거짓말”

입력 2020-06-24 16:15 수정 2020-06-24 16:40
찾는 이가 거의 없어 한산한 강원도 고성군 명파마을의 지난 23일 모습. 한때 금강산관광이 활발히 진행되던 때 이곳 도로변에만 16곳의 식당이 영업했지만 지금은 단 한곳만 운영 중이다.

한국전쟁은 67년 전 멈췄지만 접경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아슬아슬한 공존을 이어가고 있다. 남북관계가 긴장과 이완을 거듭할 때마다 이들에게는 불안과 안도가 번갈아 찾아온다.

최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며 높아진 남북 간 긴장 수위는 민간인통제선 인근 지역의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주민들은 “하루이틀 일이냐”면서도 북한의 동태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지난 22일과 23일 돌아본 경기도 파주·연천, 강원도 고성 등 접경지역은 겉으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은 작물을 손질하고 트랙터로 밭을 갈며 일상을 유지했다. 하지만 기자가 말을 걸자 주민들은 “걱정이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털어놨다.

파주 주민 A씨(57)는 연락사무소 폭파 다음날 새벽 천둥 소리에 잠에서 깼다. A씨는 “큰 소리가 나기에 오전 5시부터 뛰쳐나왔다”며 “허겁지겁 뉴스를 확인하곤 포격이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말했다. 지팡이를 짚고 집 앞을 산책하던 김인애(94·여)씨는 “나는 살 만큼 살았지만 아들과 손주들이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연천의 한 마을에서도 주민 대여섯 명이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앉아 북한의 움직임을 놓고 대화를 나눴다. 주민 B씨(75·여)는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심란한데 북한까지 이러니 말세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불안감은 이번 갈등의 단초였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다. A씨는 “열불이 나서 대북전단 풍선을 쏘아 버리려고 활을 가지고 나간 적이 있다”고 했다. 고성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이경애(60·여)씨는 “대체 누굴 위한 일이냐”며 “전단 제작과 살포에 드는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망 역시 회의론이 주를 이뤘다. 오랜 기간 거듭된 북한의 도발과 위협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겠느냐는 것이었다. 파주의 슈퍼마켓에서 만난 심희순(83·여)씨는 “2년 전엔 금방이라도 평화 통일이 될 것처럼 굴었는데 지금은 어떻느냐”고 반문했다. 연천 주민 한희도(76)씨는 “체제를 유지하려면 결국 또 도발할 것”이라며 “이곳 사람들은 포탄이 떨어져도 그리 이상할 것 없다는 마음으로 산다”고 담담히 말했다.

앞으로의 정부 대응을 두고는 목소리가 엇갈렸다. 한씨는 “저들이 스피커를 틀면 우리도 틀고 포를 쏘면 똑같이 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성 주민 이씨는 “전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식당들이 다 문을 닫고 우리 한 곳 남았다”며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는 삐라를 막고 관계를 개선해 금강산 문도 다시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한이 24일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하기로 한 것에 대해선 한시름 덜었다는 반응이었다. 이완배 통일촌마을 이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완전 철회가 아니라 ‘보류’인 만큼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적극적으로 막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파주·연천·고성=글·사진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