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빨 정규직이라니, 이게 나라냐” 인천공항 비난 폭주

입력 2020-06-25 00:10
지난 22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보안검색 노동자 정규직화 관련 브리핑을 마친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브리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던 중 직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뉴시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며 1900여명의 보안검색 요원들을 정직원인 ‘청원경찰’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뒤 관련 논란이 폭주하고 있다.

기존 공사 직원들과 보안검색 요원, 인천공항의 다른 비정규직 직원, 다른 공사의 보안검색 요원, 취업준비생 등 어느 입장에서 놓고 봐도 불공정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라는 청원 글에는 24일 정오 기준 16만5000여명이 동의를 표했다.

청원인은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들어가려고 스펙을 쌓고 공부하는 취준생들, 현직자들은 무슨 죄냐”며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게 해주는 게 평등이냐”고 항의했다. 이어 “한국철도공사에서도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후 사무영업 선발 규모가 줄었다”며 “이것은 평등이 아니라 역차별이고 청년들에게 더 큰 불행”이라고 주장했다.

포털 사이트에도 관련 논쟁에 불이 붙었다. 관련 기사 댓글창마다 ‘공정성의 부재’를 성토하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다양한 논점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가장 압도적으로 공감을 얻는 건 인천공항 취업을 꿈꾸던 ‘취준생’들에게 절망감에 가까운 허탈감을 안겨줬다는 것이다.

“취업하려고 스펙 쌓고 노력한 사람들은 뭐가 되나. 이번 정부에선 떼써서 정규직 되려는 직업군들이 왜 이리 많을까. 이게 평등인가, 묻고 싶다.” “남들은 초중고, 대학교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 관리하면서 취직하는데, 알바 하다 갑자기 정규직이라니. 이게 무슨 양심 없는 짓인가.”

“앞으로는 2~3년씩 공부할 필요 없이 대충 공공기관 알바로 들어가서 잘 보여 비정규직 되고 다시 떼써서 정규직 전환하면 되겠다.” “윗사람들에게는 선심 쓰듯 정규직 주는 게 쉽겠지만 취업 한번 해보겠다고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그 한자리로 인생이 바뀐다. 죽고 사는 문제란 말이다.”

지난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공사 직원들이 보안 검색 노동자들 직접 고용 관련 브리핑을 하기 위해 이동하는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향해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비정규직을 없애고 정규직으로 직고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고용 형태라 하더라도 이 같은 ‘막무가내’식 전환은 또 다른 불공정을 낳는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한 네티즌은 “인천공항뿐 아니라 다른 관공서들도 마찬가지이다. 몇 개월짜리 기간제로 들어와 정년보장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면 누가 일반 채용과정을 거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굳이 정규직화하겠다면 해당 직종에 대해 대대적인 정규직 채용공고를 내고, 기존에 알바나 계약직으로 일하던 이들에겐 가산점 주는 수준에서 끝냈어야 한다”면서 “마구잡이로 정규직화 시켜주는 게 과연 정상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실망감을 토로하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이래서야 앞으로 청년들이 취업하려고 노력을 하겠나. 나라 근간을 흔드는 것도 유분수다.” “진정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보여주는 구나. 우리는 불공정과 불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알바들이 갑자기 정규직이 되고, 공무원에 준하는 복리후생을 누린단다. 이게 진정한 ‘알바천국’ 아닌가.” “기회는 공정하고 평등해야 하지만, 결과까지 평등하면 안 된다. 공정하게 부여받은 기회를 살려 열심히 노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있어야 건강한 사회인 것이다.”

앞서 인천공항공사 측은 이달 말까지 계약이 만료되는 보안검색 요원들을 자회사인 인천공항경비에 편제한 후 채용 절차를 거쳐 합격자를 연내 직고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1900여명의 보안요원 중 약 30~40%가 2017년 5월 12일 이후 입사자들로, 이들은 경쟁 채용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 때문에 보안요원 노조 측은 탈락한 사람들의 고용 안정 방안 없이 졸속으로 직고용 전환 대책을 내놨다며 고용안정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정규직 전환 이후에는 임금이나 처우가 다소 개선될 전망이다. 공사는 대상 인원을 ‘청원경찰’로 채용하는 만큼 일반직 직원과 별도의 임금체계를 적용해 자회사 정규직으로 편입되는 다른 비정규직 직원들과 같은 수준의 임금을 책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복리후생 면에서는 공사 일반 직원과 같은 혜택을 받게 된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