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겸 배우 고(故) 구하라씨가 전 남자친구 최종범씨와의 법정다툼 과정에서 최씨 측으로부터 받았던 질문들의 내용이 공개됐다. 이를 두고 “피해자에게 외려 책임을 묻는 식의 질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MBC PD수첩은 23일 구씨가 최씨를 상해, 협박, 강요, 불법촬영 등 혐의로 고소한 사건의 재판 과정을 다뤘다. 최씨는 지난해 8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불법촬영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 재판부는 구씨가 최씨에게 먼저 교제와 동거를 제안했고, 불법촬영 다음 날 사진의 존재를 알고도 삭제를 안 한 점 등을 판결의 근거로 들었다.
구씨 측 변호사는 이와 관련 “피해자가 톱스타였던 것을 고려했을 때 영상 유포 시 미치는 이미지상의 치명상은 마치 사람을 죽이는 것과 못지않은 정도의 공포감이었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하지 않은 것이 대단히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구씨가 증인으로 출석한 결심공판 날 상황도 방송에서 그려졌다. 이날 구씨는 검사가 “사진 촬영에 동의하거나 묵인한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동의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했다. 또 “피고인의 휴대전화에 있는 제 사진을 보고 되게 수치스러움을 느꼈고 이 사진을 언젠가 곧 지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최씨 측 변호인이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는데 당장 삭제할 생각을 안 했느냐”고 물어봤을 때는 “어떻게 삭제할 수 있었겠느냐”라며 “그 사진으로 싸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여행을 갔을 때도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언쟁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변호인은 “노출 정도가 크지 않아 별로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아니냐”고 질문했고, 구씨는 “아니다. 나는 공인이기 때문에 그 어떤 신체 부위의 노출에 대해서도 굉장히 민감한 편”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한 변호사는 “(최씨 변호인의 질문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식의 태도”라며 “‘왜 더 적극적으로 이의제기하지 않았어?’ ‘이거 방조하거나 용인한 거 아니야?’(라고 몰아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은 구씨 사례처럼 성범죄 사건에서 다소 경미한 판결이 내려지는 것과 관련 “법적 평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평가로 여겨지지 않느냐”며 “그런 평가 체제에서 ‘그 사람은 잘못이 없고 네 잘못’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는 결국 불필요한 자책에서 못 벗어나게 된다. 이런 2차 가해가 피해자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고 덧붙였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