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황제 근무’ 의혹 산업硏, 감사원 나섰지만 ‘문제없다’ 황급히 종결처리

입력 2020-06-24 07:00 수정 2020-06-24 07:00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이 중국 베이징(북경지원) 파견자에 ‘황제 근무’를 용인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감사원이 문제점을 들여다보겠다고 감사에 나섰다. 하지만 감사원은 불과 몇 주 만에 제대로 된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고 감사를 종결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경지원에 예산을 낭비해왔다는 지적에 대해 “올해 문제를 해결했으니 감사를 종결했다”며 수년 간 예산을 낭비했는지 여부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해외 파견 중 연구실적이 저조했다는 지적에는 “현지 네트워크 구축 등의 역할을 했다”며 황제 근무에 면죄부를 주기도 했다. 정부 안팎에선 산업연구원 뿐 아니라 국책연구기관의 혈세 낭비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감사원이 걷어찼다는 비판이 나온다.

23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감사원,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달 산업연구원의 북경지원 방만 운영과 관련해 경실련이 청구한 공익감사를 종결처리 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산업연구원의 북경지원 파견 근무가 황제 근무에 버금갈 정도로 예산을 낭비하고, 별다른 연구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받은바 있다.

산업연구원은 중국 베이징에 파견보낸 직원 단 1명에게 올해 3억3000만원의 예산을 배정했는데, 사용처가 불분명한 ‘기타지출내역’만 9000만원에 달했다. 그동안 ‘북경지원장’으로 파견된 인사들이 대부분 한·중 통상이나 중국 산업 전문가가 아니었고, 파견을 보내지 않아도 만들 수 있을 수준의 간행물만 발행해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었다. 산업연구원 내부에서도 연구원들에게 줄 인건비가 부족한데 북경지원에는 예산을 과도하게 지출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국민일보 2019년 10월18일자 8면 기사 참조).

이에 경실련은 지난 3월 감사원이 산업연구원의 북경지원 예산 낭비 실태를 점검해달라고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감사를 시작한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기존 규정 및 지침만을 들여다본 뒤 감사를 지난달 13일 황급히 종결했다.

구체적으로 감사원은 “2013~2019년까지 북경지원 예산을 연구사업비로 편성했는데 여기에는 인건비와 임차료 등이 포함돼 있어 지침(경제·인문사회연구회 예산편성세부지침)에 맞다. 그리고 산업연구원이 국회 지적에 따라 올해부터 해외 근무수당 등은 인건비로, 임차료 등은 경상운영비로 편성하고 있어 종결 처리 했다”고 설명했다. 지침을 어겼다는 국회 지적에도 불구하고, 산업연구원에서 북경지원을 예산을 들여 북경지원을 설치한 게 적절했는지, 편성 예산이 목적에 따라 사용됐는지, 연구원 내 다른 사업에 비해 예산이 과도하게 많이 편성돼 특혜는 아닌지 여부를 감사원이 별도로 파악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경실련 관계자는 “예산이 표면적으로 지침에 맞게 편서됐다는 이유로 세부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은 예산 관련 감사를 아예 하지 않은 것과 같다. 대부분의 비위는 기존 지침 등을 위반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묘하게 이뤄지는데 감사원이 이를 간과했다. 감사원이 감사를 종결하며 내놓은 설명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산업연구원이 제출했던 답변 내용과 대부분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또 감사원은 북경지원 파견자의 연구 실적이 저조하다는 지적에 대해 “연구보고서 출판 외에 중국 내 관련 기관과 네트워크 구축 및 관리, 국내 관계기관과 교류·협력, 중국 산업 경제 동향분석 발간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종결 처리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은 북경지원의 실적이라며 현안 정보 공유, 세미나 등의 정례화 등을 제시했다. 예산 투입 대비 연구 성과의 양과 질이 적절한지를 따지지도 않고 단순히 산업연구원에 보고된 성과물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셈이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다른 연구기관의 해외 파견직에 비해 북경지원의 연구 성과가 적절한 수준인지 단순 비교라도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당초 이번 감사 결과를 토대로 전체 국책연구기관들의 방만한 해외 파견직 운영 실태를 들여다보는 감사를 청구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 없이 감사가 종결되면서 나머지 국책연구기관에 대한 감사 청구도 어려워졌다. 경실련 관계자는 “전체 연구기관의 해외 파견 실태를 들여다 보고 수십 억원의 혈세가 낭비되는 일을 바로 잡을 수 있었지만, 감사원의 소극적 태도에 기회를 놓쳤다”고 토로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