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기여’만 반복한 강정호 “이기적이어서 죄송합니다”

입력 2020-06-23 15:54 수정 2020-06-23 15:57
강정호가 23일 서울 상암동 스탠포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허리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가 생각해도 이기적입니다.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이기적이어서 죄송합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소속을 잃고 국내 복귀를 시도하는 강정호(33)는 세 번째 음주운전 전과를 쌓고 3년 7개월 만에 사과하는 공개석상에서 ‘사죄·반성·기여·보답’만을 반복했다. ‘음주운전 삼진아웃’을 당한 그에게 국내 야구팬들의 마음은 이미 돌아섰다. 하지만 그는 또 한 번의 타석을 요구하며 한국프로야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강정호는 23일 서울 상암동 스탠포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한다. 2009·2011년에 음주운전이 적발됐지만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졌다. 2016년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도 현장을 수습하지 않은 채 떠났다. 야구팬과 야구를 사랑하는 어린이들에게 야구선수로서 잘못된 행동을 보여 드렸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피해자들에게도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했다.

이어 “빚을 진 마음으로 살아 왔다. 어렸을 땐 ‘잘못해도 실력으로 보여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살았다. 지난 순간들을 마주하면서 부끄럽고 죄송했다”며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겠다.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됐다. 모든 비난을 감수하겠다. 팬과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강정호는 검은색 정장·마스크를 착용하고 기자회견장으로 나타났다. “말주변이 없어 써왔다”며 사과문을 낭독했고, 발언을 마친 뒤 단상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면서 “나를 받아주는 구단이 있다면 첫해 연봉을 음주운전 근절 프로그램에 기부하고, 관련 피해자를 돕는 캠페인을 전개하겠다. 비시즌에 재능기부를 하겠다. 이렇게나마 속죄하고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강정호는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입단하고 두 시즌을 완주한 2016년 12월 서울 삼성역 일대에서 음주 상태로 운전하던 중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달아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인명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당시 도로에 있던 택시로 파편이 튀어 재산피해가 났다. 강정호는 이 과정에서 2009년과 2011년의 음주운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 재판에 넘겨졌다. 2017년 5월 항소가 기각돼 원심에서 선고받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강정호는 징역형으로 미국 취업비자를 발급받지 못한 2017년에 피츠버그로 복귀하지 못하면서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렸고, 복귀한 2018년에도 3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강정호는 지난해 피츠버그와 재계약했지만,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해 8월에 방출됐다.

그렇게 9개월을 쉰 강정호는 지난달 20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복귀 의향서를 제출했다. KBO는 같은 달 25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강정호에게 1년간 유기 실격 및 봉사활동 300시간 이행 제재를 부과했다. KBO는 2018년에 개정한 야구 규약에서 음주운전 관련 처벌을 강화했지만, 강정호의 사건에 적용하지 않았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야구팬들의 반발이 나오는 이유다.

강정호는 당시 상벌위에 출석하지 않고 A4 인쇄용지 2장 분량의 사과문을 제출했다. 공개석상에서 사과한 것은 KBO 상벌위로부터 1개월, 마지막 음주사고를 낸 뒤로 3년 7개월 만이다.

강정호가 23일 서울 상암동 스탠포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단상에 앉아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강정호는 기자들에게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죄·반성’을 되풀이했고, 유·청소년 야구 교육이나 음주운전 근절 캠페인을 통한 ‘기여·보답’을 강조했다. ‘복귀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반성’이라는 팬들의 반응에 대한 의견을 묻자 강정호는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어린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복귀하려 한다. 더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정호의 KBO리그 복귀를 위한 우선 협상권은 원소속팀인 키움 히어로즈에 있다. 야구계 안팎에서는 KBO와 별도로 강정호에 대한 키움 구단의 자체 징계 가능성이 거론된다. 강정호는 “그 징계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강정호의 복귀는 키움에 작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강정호는 “아직은 어떻게 될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정으로 받아 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양심이 없는 것”이라며 “팀에서 젊은 선수나 팬들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앞으로 더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 도움을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