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학부’, 눈에 띈다.
“어릴 때는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 세대가 컴퓨터 1세대라고 할까. 컴퓨터와 관련한 대학 전공을 하려면 이과로 가야 하지 않나.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문·이과를 놓고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법학 전공을 결심한 건 부모님의 조언과 친구들의 부모님 영향이 컸다. 현재 법률사무소 든든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황 변호사의 부친을 포함해 친구 부모님 가운데 법조인이 많았다. 문과생 사이에 법학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던 것도 이유였다.”
-대학에 입학해보니, 어땠나?
“처음엔 선·후배들의 학구열을 가늠할 수 없었다. 서울대 법학부라면 전국에서 수재들이 모였다고 생각하지 않나. 나도 입학 전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신입생 땐 함께 잘 놀고 술도 잘 마셨다. 그랬던 동기들의 눈빛이 시험기간엔 눈빛이 달라지더라. ‘얘들이 어떻게 입학했지’하는 생각은 함께 공부하면서 180도 달라졌다. 사안에 대해 아주 조리 있게 설명한다고 해야 할까. 재학생 시절 4학년이 270명 정도였는데, 그 중 사법시험 합격자가 10명 내외였다. 또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하고 이듬해 최종 합격하는 학생도 40~50명이었다.”
-사법시험은 안 봤는지.
“사법시험을 준비했는데 2차에 합격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학업 스타일이 잘못됐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해당 과목을 합격선에 들 정도로만 공부하고, 보다 약한 과목에 주력했어야 하는데 한 과목을 완전히 마스터해야 한다는 생각에 파고 또 팠다. 그땐 독특한 자존심이 있었다. 점점 군 입대시기가 다가오며 전역 후에도 고시공부를 계속할지 말지 고민하게 됐다. 사시 준비에 지치 탓도 있었다. 회사들을 알아보니, 산업기능요원이라고 병역특례로 IT계열 회사로 갈 수 있었다. 유년기 막연히 꿈꿨던 컴퓨터 관련 일에 흥미도 있었다.”
-곧바로 네이버에 입사했나?
“처음부터 네이버에 들어간 건 아니었다.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IT업체에 웹 기획업무 담당자로 채용됐다. 처음 회사생활을 할 때라 열정이 넘쳤다. 거기서 2년가량 일하다가 네이버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해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네이버에선 어떤 일을 했는지.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될 때마다 변경되는 회원가입 절차, 서비스 적용, 매뉴얼 제작 등의 업무를 맡았다.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일부 이용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로그인하는 것을 막는 대책이다. 타인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도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특정 아이피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 절차는 특허로 등록되기도 했다. 이밖에 기획과 사례연구를 실시하고 직접 서비스에 적용하는 절차도 흥미로웠다.”
-다시 법률분야로 돌아왔는데.
“대학 친구들이 대부분 법조인으로 활동하는 걸 보면서, 변호사가 되지 못한 것에 점점 아쉬움이 커졌다. 마침 로스쿨 제도도 시행됐다. 변호사가 된 지금은 IT분야에서의 경력을 잘 활용하고 있다. IT 관련법, 상표, 저작권, 사이버범죄분야 형사사건 등을 다루고, IT스타트업 등의 일반적인 업무 자문과 소송대리도 진행하고 있다.”
-법무법인 강남을 거쳐, 최근 든든을 개소했는데.
“과거 파트너 변호사였던 이권호 변호사를 포함해 훌륭한 변호사들이 많아서 배울 점이 많았다. 처음엔 법무법인 더펌에 있다가 2014년 이 변호사와 함께 법무법인 강남으로 옮겼다. 올해 3월 그곳을 나와 고향인 부산에서 황준선 변호사와 함께 법률사무소 든든을 개소했다. 황 변호사와는 중·고교, 대학까지 동창이다. 오늘날 법률시장은 로스쿨 이후 변호사가 늘면서 변화하는 시기다. 오로지 고객을 바라봐야 하는 시기라는 의미다. 고객 중심의 가치를 지향하지 않는 법무법인은 앞으로 살아남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의뢰인의 입장에서 제대로 된 솔루션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뢰인조차 여전히 변호사를 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변화시키고 싶다.”
이은철 기자 dldms8781@kmib.co.kr